309page

베트남전쟁시 다국적군으로서 한국군의 역할 및 향후 과제 316 군사연구 제130집 도로를 연하여 2개 사단이 배치되는 것보다 중부지역의 핵심지역인 19번 도로를 중심으로 횡적으로 푸에이꾸-안케-뀌년에 이르는 지역에 배치되었다면 미군의 융통성있는 군사력 운용이 가능했었다. 라. 다국적군으로서 역할 평가 다국적군으로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한국군에 대한 평가는 한국군 자체 평 가와 미군에 의한 평가는 일부 차이가 있었다. 한국군 스스로 평가는 군사작전 및 평정작전 등 많은 작전을 통해 군사적으로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반 면 미군 측의 입장에서 보면 작전통제권, 부대배치 및 운용, 작전수행 의지 등에 서 상호 갈등을 겪었다. 그러므로 연합작전을 수행했던 다국적군 일원으로 임무 를 수행했던 것에 대한 일부 비판적인 평가는 겸허하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웨스트 모얼랜드 장군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즉 월남에 파견된 한국군 은 모두 지원병이었다. 수도사단은 1953년 봄의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의 춘계공세 를 취했을 때 나의 제187공정여단의 인접부대이던 수도사단과는 판이하게 다른 전투력이 강한 부대였다. 나는 한국전쟁에서 한국군 제9사단의 인접부대로도 싸 웠지만 월남에 온 제9사단도 역시 당시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국 해병여단은 지 휘권의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방위전에서 잘 싸웠다. 박 대통령의 지시 때문에 모든 주월한국군 부대들은 전투피해를 내지 않도록 몹시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한국군 부대는 장기간의 준비와 강력한 공격전 지원사격을 요하는 작전에 참가하려는 의식적인 경향을 낳게 했다.” 39) 한편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즉 한국군 작전에 대한 미국의 선임장교들의 평가 는 베트남 파병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비판적인 경향으로 되었다. 몇 가지 요인 중 하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최초 도착한 한국군의 높은 수준, 즉 “곡물위의 크림 (cream of the crop)”과 같은 멋진 군인들과는 비교가 되는 능력이 떨어지는 수준이 었다. 그리고 미 제1야전군 사령관 콜린 중장은, 한국군은 헬기와 지원을 과도하게 요구했으며 작전 후 너무 장기간 차기작전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군 2개 사단의 노력은 미군의 1개 여단의 노력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40) 39) 월리암 C. 웨스트모어랜드․최종기 譯, 『왜 월남은 패망했는가』, p.297. 40) Department of the army Washington, D.C, Allied Participation In Vietnam,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Washington, D.C., 1975), pp.15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