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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시 다국적군으로서 한국군의 역할 및 향후 과제 314 군사연구 제130집 었다면 보다 나은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베트남전쟁을 연구함에 있어 연합군의 전술적 승리와 전략적 패배로 귀결된다. 즉 월남전은 사실상 월맹군이 야기시켰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된 적은 월남내 의 혁명운동 세력(Viet cong)이라고 오인하고 있다. 월남의 미군은 이들 “Viet cong ”이라는 견제부대(diversionary force)에 미혹되어 끝내 월맹군의 침투를 저 지하지 못하였다. 33) 그리고 미군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대(對)반란활동 (countersurgency)’을 벌이다 진이 빠졌다. 차라리 그들은 라오스로 진입해 적의 남쪽 유입로를 차단하고, 남베트남군을 도와 베트콩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34) 지금까지의 베트남전쟁에 관한 연구는 국익에 관하거나 전투에서의 승리 및 참전결과가 국가발전에 미친 영향 위주였다. 그러나 작전을 주도했던 미군의 시 각에서 보면 한국군의 배치나 운용이 과연 적절했는지, 두 번의 공세 즉, 1968년 의 뗏 공세와 1972년 춘계공세와 제3차 베트남전쟁에서 북베트남군의 주공방향에 서 중부고원지대가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에 비해 한국군의 임무는 적절했는지 냉 철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제4차 파병으로 제9사단과 수도사단 제26연대의 파병시 증파부대에 대한 작전 통제권과 부대 운용에 대해 미군 측과 이견이 심각했다. 당시 미군은 제9사단의 운용을 “1개 연대는 대대단위로 투이호아, 캄란, 나트랑, 비엔호아 등지의 미군기 설을 경비하는데 사용하고 잔여 2개 연대는 예비로 집결보유했다가 중부월남에서 준동하는 월맹군과 지방 게릴라들을 토벌하기 위한 기동타격대로서 운용하되, 미 군이 이를 직접 지휘통제하여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35) 당시 미군의 입장에서 보면 제9사단의 배치를 검토했던 ①번 지역의 푸레이꾸 지역은 캄보디아 접경지역으로 북베트남군 남하 루트를 차단하고 그 요지에 거점 을 확보하여 거기서부터 사방으로 작전을 전개해 나간다면, 난관도 있지만 성과 도 기대되는 곳이었다. 36) 이에 대해 당시 주월한국군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은 한국군 배치의 이격으 로 따른 지휘․군수지원의 문제, 베트남 중부와 남부를 연결하는 1번 도로의 전 33) 해리 서머스․민평식 譯, 『미국의 월남전 전략』, p.10. 34) 니알 퍼커슨․김일영 외 譯, 『COLOSSUS』(아메리카 제국 흥망사), 2010, p.175. 35) 나종삼, 『월남파병과 국가발전』, 국방군사연구소, 1996, p.201. 36) 채명신, 『베트남전쟁과 나』, 팔복원, 2007, p.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