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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사 사 / 기 타 군사연구 제130집 311 공세기간 중 실시된 호이안 시(市) 전투와 6․25전쟁시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두 번째 상륙작전이었던 베리아 상륙작전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먼저 호이안 시 전투 26) 는 1965년 1월 30일부터 2월 7일까지 해병여단의 유일 한 북베트남 정규군과의 전투로 제3대대가 작전을 수행했다. 이 전투를 통해 해 병대가 최종 임무 수행지역인 호이안 지역으로 이동 후 미 해병 제3상륙군 예하 부대와의 연합작전시 어려움에 대해 알 수 있는 전투였다. 북베트남군 제2사단 제1연대 예하 대대가 호이안 시를 점령하자, 이를 격퇴하 기 위해 제3대대는 미 해병 전차 1개 소대와 남베트남군 1개 중대를 배속받아 2 일 동안(2. 6~7) 시가지 전투를 수행했다. 작전을 통해 적 사살 150여 명, 포로 6 명, 다수 장비 및 문서 노획 등의 전과가 있었다. 그러나 미군과의 연합작전 수행 상 많은 문제가 내재되어 있었다. 즉 수도사단과 제9사단과는 달리 제3대대의 경 우 미 해병 제5연대 관할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했던 이유로 미군의 작전통제권과 직속상관인 여단장의 작전 지휘권 틈바구니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27) 한편, 다음 해 1969년 9월 5일부터 28일까지 베리아(Berrier) 상륙작전 즉 승룡 15호 작전을 실시했다. 당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베리아 지역의 지형적 이점 을 활용해 반도 일대에 훈련소와 보급 및 의료시설은 물론, 탄약 및 부비트랩 제 조창을 설치 해 그들만의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 작전은 미 해병 제26연 대 제1대대 상륙단과의 한․미 연합상륙작전을 통해 상륙계획 수립을 비롯한 전 단계를 주도함으로써 상륙작전의 실전경험을 쌓는데 크게 기여했다. 28) 즉 그동안 상륙작전에 대비하여 그 간에 피나는 교육훈련을 실시해오다가 베리아반도 상륙 작전을 감행함으로써 장병들에게 실전을 통한 상륙전기(戰技)를 직접 체득할 수 있는 산 교육의 계기가 되었다. 29) 그리고 그동안 꽝남성 및 꽝딘성 다낭시에 대 26) 육군본부,『駐越韓國軍 戰爭史料』제14집(戰鬪詳報), 군사연구실, 1998, pp.288∼328.에 ‘괴룡 1호 작전’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제3대대의 ‘호이안 시 전투’는 괴룡 1호 작전의 일부 로 실시된 전투다. 27) 최칠호,「베트남전쟁시 호이안 전투 시(市) 전투교훈」,『군사』제47호, 군사편찬연구 소, 2002, pp.106∼110. 해병대는 호이안 시 전투이전에도 짜빈동 작전, 소탕작전인 거 룡작전(1967.2.17∼22), 바카탄반도의 해룡작전(1967.4.1∼7), 뇌룡작전(1967.5.18∼27), 용머리 5호작전(1967.8.2∼11) 등 한․미․남베트남군과의 연합작전을 수행했다. 해병대사 령부,『해병사』제6집, 해병대사령부 작전참모부, pp.333∼334. 28) 최용호,『베트남전쟁과 한국군』, pp.345∼348. 29) 국방부,『派駐越韓國軍戰』제7권, 전사편찬위원회, 1976, p.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