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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시 다국적군으로서 한국군의 역할 및 향후 과제 310 군사연구 제130집 전사자는 총 2,456명으로 48%였다. 이는 전투가 소강상태였음에도 전사자의 비율 이 전반기와 유사한 것은 당시 파병기간의 장기화, 휴전 및 철수 분위기 등으로 작전준비 및 기강에 문제가 있었다. 특히 수도사단의 안케고개 전투는 한국군의 단일전투로 전사자가 가장 많은 74명이 발생하여 1972년 전체 전사자 513명의 14.4%로 <표 6>과 같다. <표 6> 후반기 한국군의 주요작전 결과 25) 나. 해병여단 운용 해병여단은 전투부대 최초로 1965년 10월 6일 캄란항에 도착 후 투이호아-추 라이-호이안으로 3번 작전책임지역을 변경하면서 철수시까지 180회의 작전을 수 행했다. 많은 작전 중 까두산 전투, 짜빈동 전투, 베리아 작전 등을 통해 많은 전 과를 올렸다. 여기에서는 미군과의 연합작전 측면에서 1968년 북베트남군의 뗏 25) 최용호,『통계로 보는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p.40. 표를 그래프로 도식 작전병력 50,000 43,408 42,439 40,000 42,602 30,000 33,177 작전실시 300 301 257 200 216 50 58 전사자 (작전병력 對 손실률, %) 700 746(1.7) 600 650(1.5) 513(1.5) 500 504(1.1) 43(3.23기준) 구 분 명(회) 1969년 1970년 1971년 1972년 197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