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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사 군사연구 제130집 281 루나가 지지자들과 함께 LTTE에서 떨어져 나와 타밀인민해방호랑이(Tamil People's Liberation Tigers, TMVP)란 당파를 조직했다. 그 뒤부터 LTTE와 TMVP는 (전면전은 아니지만) 낮은 단계의 무장충돌을 벌이곤 했다. 2007년 봄 스리랑카 대통령 라자팍사는 카루나를 각료급인 국민화해부 장관으로 임명, LTTE 와해공작에 나서도록 했다. 2008년 5월 스리랑카 정부는 한해 전에 정부 군이 LTTE로부터 빼앗은 동부지역의 행정책임자로 카루나를 임명했다. LTTE의 분열은 LTTE 전력을 약화시켜 스리랑카 내전에서의 힘의 균형을 무 너뜨리는 데 일조했다. 1996년 정부군이 대공세를 폈을 때 LTTE의 근거지인 자 프나 반도를 한때 점령해 내전이 거의 끝나는가 하는 관측마저 나온 적이 있었 다. 그렇지만 LTTE는 필사적인 반격으로 1999년 무렵엔 그동안 잃었던 땅을 대 부분 되찾았고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마저 넘보았었다. 2009년 봄 LTTE가 위기 에 몰렸을 때 많은 외부 관측자들은 LTTE가 끈질긴 생존력으로 존립을 유지할 것이라 내다본 것도 10년 전 LTTE의 위기극복 능력을 떠올려서였다. 그러나 기 적은 두 번 거듭 일어나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LTTE 내부의 분열도 뒤에 살펴 볼 다른 요인들(중국의 적극적 군사지원과 그에 따른 스리랑카 정부군의 강화)과 맞물려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정치적 타결을 거부한 LTTE의 강경일변도 노선. 스리랑카 정부군에 비 해 모든 면에서 전력이 뒤지는 LTTE는 그동안 몇 차례 휴전협정을 통해 내전을 그치고 그들이 바라는 (독립 국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치적 독립을 이룰 기회가 있었다. 2005년 스리랑카 대통령선거에서 강경파인 야당후보와 상대적으로 온건 파인 여당후보 사이의 접전이 벌어졌을 때, LTTE는 점령지역의 투표 자체를 거 부함으로써 야당후보 스리랑카자유당(Sri Lanka Freedom Party, SLFP) 지도자 라자팍사가 근소한 표차이로 승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협 상보다는 군사력으로 내전을 끝낸다는 강경전략을 세우고 LTTE를 몰아붙여 승 리를 거두었다. LTTE에게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강경파 지도자 라자팍사가 집권한 뒤인 2006년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4년 전 서명했던) 휴전협정을 연장할 것인 가의 협상이 벌어졌고 4월까지 내전은 소강상태를 이어갔었다. 그 짧았던 평화를 깨뜨린 것은 LTTE였다. 잇단 자살폭탄테러로 싱할리족 강경파들을 자극함에 따 라 (LTTE와의 휴전-평화협상-종전을 구상하던) 스리랑카 정부내 온건파의 입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