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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내전, 정부군의 승리 요인과 반군 LTTE의 궤멸 요인 280 군사연구 제130집 미 국무부가 해마다 발행하는 ‘테러보고서‘에는 LTTE뿐만 아니라 스리랑카 정 부도 심각한 인권침해를 저지르고 있다고 돼있다(미 국무부는 1997년부터 LTTE 를 테러단체로 낙인찍고 해외 지원금이 LTTE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제재를 가해왔다). 그렇지만 9․11 테러가 일어난 뒤 스리랑카는 급격히 미 국과 가까운 사이가 됐다. 미국 부시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다며 아프가 니스탄을 침공할 때도 스리랑카는 지지의사를 나타냈다. 자폭테러전술을 즐겨 써 온 LTTE와 힘겨운 내전을 치러온 스리랑카 정부로서는 “우리도 테러와의 전쟁 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우리를 도와달라”는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내전 기간 중 미국은 스리랑카 정부의 인권침해 행태에도 불구하고 미 군수업 체들이 스리랑카에 무기수출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그 거래규모는 그저 ‘수백만 달러어치’로 알려진다). 2007년 12월에서야 ‘스리랑카 정부가 저지르는 인권침해 사례’를 이유로 무기판매 금지 조처를 내렸다. 미국이 스리랑카에 지닌 관심은 스 리랑카 자체의 평화나 안전보다는 인도와 관련해서였다. 스리랑카 불안정은 곧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인 인도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걱정했기 때문이었 다. 인도 남부지역인 타밀 나두(Tamil Nadu)의 민심을 흔들 가능성이 크고, 자 칫 인도에 스리랑카 불똥이 튀면 남아시아의 불안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지난날 미국은 스리랑카 내전에 적극 개입하는 것을 삼가면서 인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관심을 보였다고 평가된다. Ⅳ. 정부군의 승리 1. LTTE 패배의 네 가지 요인 LTTE 패배의 요인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LTTE 내부의 분열. LTTE의 지도력은 출범 초기부터 벨루필라이 프라 바카란(1954년생)의 강력한 카리스마 아래 있었다. 프라바카란은 조직을 이탈하 려는 어떠한 움직임에 대해선 암살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잔혹하게 대응해왔다. 전황이 어려울 때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프라바카란의 지도력은 2000년대 들어 내전 말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04년 3월 LTTE의 동부지역사령관 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