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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사 군사연구 제130집 277 스리랑카 정부대변인이 휴전협정 파기를 선언한 것은 2008년 1월. 그때까지 기 술적으로는 휴전협정 문서가 파기된 것은 아니었고, 노르웨이인들로 구성된 휴전 감시단이 스리랑카에 머물고 있었다. 그렇지만 스리랑카 정부는 물론 LTTE도 거듭 휴전협정을 어겼다. 마치 6․25 한국전쟁에서 1953년 7월 정전협정을 맺은 뒤로도 비무장지대에서 군사적 충돌이 그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내전의 양상이 평화협상보다는 어느 한쪽으로 힘의 균형이 무너질 때까지 소모전을 펼치 며 희생자를 양산한 데는 양쪽 모두에 책임이 있다. 3. 내전 악화시킨 인도정부의 개입 약소국의 대외관계에서 늘 그러했듯이, 스리랑카 내전은 남아시아의 강대국이 자 바로 이웃나라인 인도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강대국들은 약소국의 평 화와 안전문제를 강대국의 이해관계라는 잣대로 잰다”는 국제정치학의 기본법칙 에서 인도도 예외는 아니다. 인도정부는 한때는 반군 LTTE를 지원했다가 나중 에 그것이 인도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오히려 1987년 병력을 보내 무력진압에 나섰다가 3년 뒤 철수했다. 그 때문에 스리랑카 내전은 더 악화 됐고, 그 과정에서 1991년 인도 남부의 타밀 나두를 방문했던 인도총리 라지브 간디가 LTTE 자폭테러범에 죽임을 당했다. 남아시아의 정치지형은 인도-파키스탄이 지역패권을 다투는 양강구도다. 두 국 가의 첨예한 대립현장이 지구촌 분쟁지역 가운데 하나인 카슈미르다. 인도-파키 스탄은 가난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지역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거액을 쏟아부어왔고, 이웃 국가들을 자기편에 붙잡아두기 위해 애를 써왔다. 그 과정에서 국가정보기관이 주요역할을 했다. 파키스탄은 이웃 아 프가니스탄이 탈레반정권의 지배 아래 놓여있던 시절에 정보부(Inter-Services Intelligence, 약칭 ISI)를 통해 아프간 내정에 깊이 개입했고, 탈레반 정권이 무너 지고 카불에 친미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음으로 양으로 줄을 대고 있다. 그것이 파키스탄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마찬가지 이유로 인도도 정보부(the Research and Analysis Wing, 약칭 RAW)를 통해 스리랑카 내전에 개입했다. RAW가 스리랑카 내전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부터다. 1970년대엔 RAW가 LTTE 훈련과 무장을 도왔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스리랑카 북부 자프나 반도 상공으로 공군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