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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사 군사연구 제130집 273 의 군사력을 꼽을 수 있다. LTTE는 비록 소규모지만 레바논의 헤즈볼라조차 갖지 못한 공군력을 보유, 2007년 봄엔 스리랑카 공군기지를 공습함으로써 세계 를 놀라게 했다(이 글 뒤에서 살펴보듯이, LTTE는 내전 끝 무렵 중국에서 대량 들여온 무기로 무장을 강화한 정부군의 대공세에 밀려 결국 궤멸됐다. 그래서 “중국이 내전을 끝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둘째, 다수민족인 싱할리족 내부의 극단적인 정치정서, 그리고 LTTE의 강경노 선이 평화로 가는 휴전협상의 발목을 잡아 내전이 그토록 오래 끌게 됐다. 먼저, 싱할리족 정당들은 소수민족인 타밀족과의 합리적 권력배분만이 내전을 종식시킬 것이란 지적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특히 극단주의적 민족주의 정강을 내세우 는 우파정당들은 제3자가 개입해 어떠한 스리랑카 평화회담의 분위기를 띄우려 해도 “우린 양보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LTTE를 ‘테러단체’로 규정한 스리랑카 헌법은 재적 3분의 2 찬성으로 바꿀 수 있는데, 내전 기간 동안 군소정 당들이 난립한 스리랑카 의회에서는 헌법 개정이 어려운 상태였다). 강경노선을 걷기는 LTTE도 마찬가지였다. 역대 스리랑카 정부가 보다 관대한 조건으로 권 력분배를 제안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스리랑카에 한때 평화의 볕이 깃들기도 했다. 2002년부터 2006년 사이의 휴전기간이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에도 교전 양쪽, 특히 LTTE는 휴전협 정을 어기는 다양한 공격을 벌였고, 결국 2006년 6월부터 전쟁이 다시 격화됐다. 그로부터 3년 동안은 정부군의 대규모 공세에 밀려 반군 LTTE의 지배구역이 점 점 좁아지는 기간이다. 공세를 편지 1년만인 2007년 여름 정부군은 스리랑카 동 부지역을 장악했다. 그때까지도 서류상으로 양쪽은 ‘휴전중’이었다. 2008년 초 공 식적으로 휴전무효를 선언한 정부군은 스리랑카 북부로 진격, 2009년 5월 마침내 LTTE 최후의 근거지를 점령하고 반군 지도자들을 사살, 체포함으로써 승리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셋째, 스리랑카 내전을 오래 끈 요인으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제대로 중 재자 역할을 하거나 유엔헌장 제6장과 제7장에 규정된 평화유지군 파병 조항에 따라 적극 개입하지 못했다. 유엔총회에서는 스리랑카 내전을 평화롭게 끝내 더 이상 민간인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결의안이 여러 차례 나왔지만, 그 결의안은 ‘선언적인 의미’ 이상을 지니지 못했다. 유엔 안보리에서 스리랑카 내전에 대해 갑론을박은 있었지만, 평화유지군 파병도 없었다. 잔혹한 전쟁범죄와 인권침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