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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내전, 정부군의 승리 요인과 반군 LTTE의 궤멸 요인 268 군사연구 제130집 화와 안정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전쟁피로증 (war weariness syndrome) 이나 전쟁종결을 바라는 국내외의 정치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스리랑카 내전이 두 교전 당사자 사이의 군사적 균형 이 무너진 뒤에야 막을 내렸다는 점에서 베트남전쟁과 닮았다. 베트남에서는 하 노이정권이든 사이공정권이든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군사적으로 궤멸시키고 (군사적 균형을 깨뜨리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 어떠한 정전 노력도 소용없었다. 본고에서는 ‘전시상황에서는 평시와는 달리 힘의 균형이 반드시 안정 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전제 아래 스리랑카 내전의 전개과정을 살펴보기로 한 다. 본고는 크게 세 가지 내용을 다룬다. 첫째는 스리랑카 내전의 배경-전개과정, 둘째는 내전이 26년을 끈 요인들, 셋째는 2009년 정부군이 반군을 궤멸시키고 승 리를 거둔 요인들의 분석이다. 특히 본고는 중국의 군사원조가 스리랑카 내전에 서 힘의 균형을 깨뜨리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데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었다. Ⅱ. 스리랑카 내전의 배경-전개과정 1. 분리독립투쟁 vs 테러와의 전쟁 남아시아 인도양의 작은 나라 스리랑카 내전의 역사를 따져보면 60년에 이른 다. 전반 30년은 정치적 갈등, 후반 30년 가까이는 군사적 충돌의 긴장 속에 보냈 다. 스리랑카 내전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일어났던 여러 전쟁 가운데 희생자 규모 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지속성이란 측면에서 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전쟁이다. 다 수민족인 싱할리족(Sinhalese)으로 이뤄진 정부군과 소수민족 타밀족(Tamil)의 ‘타밀엘람 해방호랑이들’(LTTE) 사이의 내전은 2009년 5월 LTTE 지도자 벨루 필라이 프라바카란(Vellupillai Prabhakaran)과 지도부가 정부군에게 사살됨으로 써 정부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스리랑카 내전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숫자는 10만 명에서 15만 명으로 추산된 다. 내전의 특성상 전투원보다는 민간인들이 훨씬 많이 죽고 다쳤다. 특히 내전 막바지였던 2009년 1월에서 5월까지 스리랑카 동북부 지역 민간인들이 겪은 피해는 엄청났다. 스리랑카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지역에 갇힌 수십만 명의 민간인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