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page

6․25전쟁시 날씨와 전투사례와의 연계성 연구 252 군사연구 제130집 4. 추위 - 장진호전투, 남부군전투 맥아더 장군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동쪽인 원산에 10월 말, 해병부대를 상륙시켜 진격시켰다. 그러나 산악지역으로 중공군이 참전하여 미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중공군과 함께 미 해병부대를 곤란에 빠뜨린 것은 일찍 찾 아온 추위였다. 11월 10일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기온이 영하 18℃ 이하로 떨어졌다. 일부 산악지역으로는 영하 26℃까지 내려갔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자 장병 중에는 추위가 심해 일시적으로 쇼크를 일으킨 병사도 있었다. 해 발 1,200미터의 황초령을 넘어 후퇴할 때는 호흡 곤란 증세를 느끼는 병사들이 많았다. 수통의 물이 얼어버려 군복 속에 넣어서 체온으로 보온해야만 마실 수 있었다. 음식물도 수분이 들어있는 것은 모두 얼어붙었다. 얼어버린 물이나 음식 을 그대로 먹은 병사들은 복통을 일으키거나 설사를 했다. 칼빈 소총은 얼어붙어 발사가 안 되기 일쑤였고, M1소총이나 기관총은 총 기름이 얼어서 작동이 곤란 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참혹한 날씨 조건은 미군이나 중공군에게 동일했다. 그러나 추위에 대한 대책 이 없었던 중공군은 혹한으로 엄청난 병력손실을 입었다. 여기에 비해 미군은 동 상을 방지하는 비책과 난방물품을 보급함으로써 전력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추위로 인한 1해병 사단의 병력손실이 7,313명이었던 반면에 중공군은 9병단에서 만 51,000명이나 발생했다. 장진호전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장진호 동쪽에서 싸웠던 미 7사단의 장병들은 놀랍게도 동상으로 인한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 이것은 7사 단 지휘관이 평소부터 장병들에게 추운 날씨를 대비한 훈련을 시켜왔기 때문이 다. 그는 마른 양말을 자주 갈아 신게 했다. 또한 손발을 계속 움직여 혈액 순환 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습관을 가르쳤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이런 작은 관심과 지 휘가 무위의 병력손실을 막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1연대장 풀러 대령은 11월 하순 고토리에서 중공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수송수단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는 전투를 위해 탄약을 먼저 보내달라고 할 것인가, 난방시설을 먼저 보내달라고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만 했다. “살아 있 기만 하면 총검만으로도 싸울 수가 있다. 우선 생존(生存)하는 것이 긴요하다.” 풀러 대령은 난방시설을 먼저 보내 주도록 요청했다. 당연하게도 1연대는 병력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