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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사 군사연구 제130집 247 Ⅲ. 전투에서의 날씨 영향 분석 1. 비와 악시정(惡視程) - 미아리와 펀치볼 전투 6․25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의 기후 통계를 보면 봄철에는 30여 년만의 가뭄 때문에 전국적으로 한발(旱魃)이 심한 해였다. 그러나 경기도 일원에는 6월 19일 부터 25일까지 줄기차게 비가 내려, 작전지역 내의 도로는 엉망이었다. 특히 6월 24일에는 호우(豪雨) 9)가 쏟아져 하천까지 범람해 도로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 비는 일시적으로 소강상태를 보이기도 했으나 미아리 전투가 벌어진 27일까지 줄기차게 이어져 미아리 전투에서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전쟁사를 보면 제공권을 빼앗겼거나 적은 수의 병력으로 기습을 할 때 흔히 악기상(惡氣象)을 이용한다. 그런데 미아리나 문산 전투의 경우를 보면 전력과 화 력이 일방적으로 우세했던 북한군이 악기상을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 은 미아리나 문산 전투에서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군의 용맹성으로 예상 밖의 전차 피해가 생기자 북한군 지휘관은 가장 나쁜 기상조건이 가장 유리한 공 격시간이라고 판단하여 심야에 폭우가 쏟아질 때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이에 반 해 한국군 지휘관들은 비가 많이 내려 전차 기동이 어렵고, 북한군은 야간에 전 투를 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방심을 했다. 결국 이것이 미아리전투의 승 패를 갈랐다. 펀치볼(Punch Bowl) 전투에서도 호우와 악시정이 승패를 결정지었다. 미군과 한국군은 7월 27일부터 공격을 개시했으나 30년만의 호우로 공격을 중단했다. 중 부지방의 장마는 대개 7월 말이면 끝이 난다. 그러나 이 해는 8월 중순까지 지속 되었고, 장마가 끝난 후에도 장마전선 연변에서 강한 대기불안정(大氣不安定)으로 저녁때가 되면 어김없이 강한 비가 내렸다. 높은 고지가 많아 흘러내리는 물들이 조그만 소하천으로 모이면 쉽게 범람하고, 게다가 평지는 분지지형이기에 평소에 도 습기가 높은데다가 조금의 비가 오면 진창으로 변하여 병력의 이동이 어려운 조건이었다. 또 1,000m급 이상되는 고지는 비가 오지 않더라도 습기가 상승하면 9) 보통 한 시간에 30㎜ 이상이나 하루에 80㎜ 이상의 비가 내릴 때, 또는 연 강수량의 10%에 상당하는 비가 하루에 내리는 정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