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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시 날씨와 전투사례와의 연계성 연구 246 군사연구 제130집 가면서 자신들의 생존도 어려운 입장이었던 산간 주민들을 대상으로 약탈을 자행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어느 정도 게릴라에 호의적이던 주민들마저 적으로 만들 어 패배에 이르는 한 원인이 되었다. 그림. 영화 ‘남부군’의 한 장면 그러나 태백산 지역의 게릴라 토벌(討伐)작전을 벌이던 미 해병 1사단이 유엔 군의 제2차 반격작전인 도살작전(Killer Operation)에 참가하기 위해 북상하자, 국 군 2사단이 게릴라 토벌임무를 인계받게 되었다. 1951년 2월 17일 태백산 지역에 투입된 국군 2사단은 31연대로 안동~영주~단양간의 주 보급로를 확보하게 하 고, 32연대와 17연대를 타격부대로 활용하여 보현산~태백산 일대의 게릴라 토벌 작전을 전개하였다. 국군 제2사단이 투입되어 강력한 토벌작전이 시작되자 북한 군 게릴라들은 탄약의 부족과 함께 기아와 혹한을 견디지 못하고 2월 말 경에는 북(北)으로의 탈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2사단은 북으로 도주하는 게릴라를 청 송~영양 방면으로 맹추격하였고, 3월 1일 새벽에 영양 북쪽의 일월산 지역에서 북상 도주하는 게릴라를 기습 공격하여 치명타를 가하였다. 이로써 1950년 12월 말부터 계속된 태백산 지구의 게릴라들은 3개월 만인 3월 하순에는 완전히 소탕 되면서 작전은 끝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