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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시 날씨와 전투사례와의 연계성 연구 236 군사연구 제130집 북한군 6사단의 위협을 차단하였다. 하지만 정면에 있는 북한군 6사단도 정예사 단으로, 끊임없이 마산을 위협하고 있었다. 마산은 부산 함락과 연결되는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지역이었다. 북한군과 대치하던 미군은 북한군이 8월 공세의 주공(主攻)을 대구전선으로 집중시킬 것으로 보이자 선제공격에 나서게 된다. 즉, 마산에 배치된 미 25사단으로 하여금 마산의 서쪽인 진주-사천을 연결하는 선까 지 방어선을 확장함으로써 부산의 서측방 위협을 없애고, 대구 정면에 집중된 북 한군을 마산 지역으로 유인하여 대구 정면의 압력을 분산시킨다는 전략이었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방어 위주에서 공세적인 작전으로 전환한 것이다. 워커 장군은 윌리엄 B·킨(William. B. Kean) 소장의 미25사단 병력 2만 4,000여 명과 전차 101대로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고 북한군을 공격하기로 결심한다. 부 대의 이름은 사단장의 이름을 따 ‘킨 특수임무부대(Kean Task Force)’로 명명하 였다. 미군의 공격은 8월 7일 06시 30분에 시작되었다. 그림. 킨 특수임무부대의 작전상황도 공격과 더불어 닥친 무더위로 인해 미군의 전차부대와 보병부대는 고전을 하 고 있었다. 게다가 북한군의 게릴라 전술로 피해가 속출했다. 8월 12일 한밤중에 는 봉암리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지원포병 3개 대대가 거의 전멸하는 참사를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