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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역 사 및 역 사 일 반 군사연구 제130집 221 (국문초록) 역사상 춘천의 군사적 거점과 가치 - 유 재 춘 - 집단과 권력이 발생하고 집단간의 갈등이 수반되면서 그 집단의 근거지는 항상 군 사적인 측면이 고려되었다. 이는 집단의 생존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 때 문이다. 따라서 역사이래 수많은 전쟁을 통해 그 역사적 흔적이 어느 지역에나 남아 있게 되었다. 이러한 군사적인 성격의 유적은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 나게 되는데, 특히 한 지역내에 한정하여 본다면 그 지역의 군사적인 거점의 변화는 바로 중대한 역사적인 변화 양상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춘천지역내에 존재하는 군사 적 거점인 성곽유적에 대한 연구는 춘천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역사적 변화를 읽어내 는데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춘천지역의 주요 군사유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성곽유적으로는 우두산성을 비롯하여 봉의산성, 삼악산성, 용화산성 등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성곽유적은 동시기에 운영 되던 성곽이 아니라 시대 상황의 변천에 따라 각기 다른 입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성곽이 이전되게 되는 것이다. 고대 시기에 춘천을 중심으로 성립되었다고 전해오는 맥국과 관련된 유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성격이나 흔적이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우 두산성의 경우는 춘천지역의 고대사 규명에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춘천에 근거한 초기 세력집단에 의해 활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신라의 춘천 진입 이후 7세기 후반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羅唐戰爭 이 격화되어 가는 중에 신라는 춘천에 주양성(현재의 봉의산성으로 추정)을 새로 축 조하였다. 신라는 남쪽에 근거지(수도)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당나라와의 전쟁이 더욱 격화되어가는 위기 상황에 봉착하면서 더 험준하고 견고한 요새지가 필요했고 더구나 江 북쪽의 배수진이 되는 우두산보다는 전면에 강을 두고 지킬 수 있는 봉의 산 쪽이 전투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이후 고려시대에 들어 蒙古軍에 의해 春州城(봉의산성)이 함락된 이후 봉의산성은 더 이상 춘천의 입보성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후 산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보다 는 피란성으로의 기능에 더 비중을 두게 하였고 결과적으로는 산성을 매우 험준하고 궁벽한 곳에 구축하게 하였다. 춘천의 경우 봉의산성이 폐기되면서 삼악산성과 용화 산성이 입보성으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