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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춘천의 군사적 거점과 가치 218 군사연구 제130집 연결되어 있고 이 능선을 중심에 두고 신북읍 일대와 동면 장학리 일대, 그리고 용산리→사농동 일대로 연결되는 지대가 모두 개활지여서 쉽게 감시와 사격이 용 이한 지점이다. 또한 봉의산은 비록 표고는 높지 않지만 춘천시내 전 지역과 소양 강 북안으로도 분지 안의 거의 모든 지역을 쉽게 관제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춘천전투에서의 성공적인 방어전이 가능하였던 것은 물론 국군의 탁월한 지휘 력, 전투력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와 더불어 춘천이 가지고 있는 지형적인 특징 도 또한 중요한 조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Ⅷ. 맺 음 말 이상에서 고대~현대 6․25전쟁시기 춘천전투에 이르기까지 춘천의 군사적 거 점이나 국방전략상의 위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신라가 춘천에 우수주를 설치하기 이전의 관방시설물로 전해오는 유적에 대해 검토하여 보았고, 또 신라가 춘천에 우수주를 설치한 이후의 관방시설 문제에 대해 살펴보았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貊國 왕성터의 경우는 아직 傳言이 있을 뿐 역사고고학적인 뚜렷한 고증을 얻어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 할 수 있고, 이외에 맥국시기와 관련하여 거론되고 있는 수리봉 산성의 맥국 성터설은 잘못된 것이며, 발산리~우두산 구간의 축성설은 지내리 적석유구의 성격 규명과 아울러 이 구간에의 구릉지대에 대한 좀더 정밀 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두산성의 경우는 춘천지역의 고대사 규명에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이미 필자가 주장한 바와 같이, 맥국이든, 아니면 말갈이든 춘천에 근거한 초기 세력집단에 의해 활용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삼 악산성의 맥국 관련설은 현재까지의 역사고고학적 조사 성과를 놓고 볼 때 관련 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신라의 춘천 진입 이후 7세기 후반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羅唐戰 爭이 격화되어 가는 중에 신라는 춘천에 주양성을 새로 축조하였던 것이다. 당시 신라가 주양성을 축조하기 이전에 어느 곳에 어떻게 거점성을 확보하고 있었는지 는 아직 명확히 밝히기 어렵다. 다만 신라의 춘천 진입 이전에 기존세력이 사용 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우두산성을 신라가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다면 신라는 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