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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역 사 및 역 사 일 반 군사연구 제130집 217 여 우두산 일대의 방어진지에 대해 강력한 공세를 취하였으므로 봉의산에서 전황 을 지켜보던 사단장은 7연대와 19연대를 소양강 남안으로 철수시켜 방어진지를 구축하도록 하였다. 소양강 남안으로 철수한 국군은 일부는 춘천의 동측방을 방어하기 위해 봉의 산 동남쪽의 후평리로 이동했고, 적이 소양강 도하를 위해 소양교로 몰릴 것으로 예상한 연대장은 전 화력을 보유하고 있던 8중대를 소양교 남단의 범바위 주변에 집중 배치했다. 따라서 봉의산을 중심으로 한 소양강 남안의 방어선이 완성됐다. 6월 27일 오전 5시부터 북한군의 공격준비사격이 봉의산을 비롯한 춘천 시내에 가해졌고, 1시간 후 총공격이 시작됐다. 이후 소양강을 사이에 두고 피아간 치열 한 공방전이 벌어졌으나 병력과 장비면에서 크게 열세에 있던 국군은 이들을 저 지하는데 한계가 있었으며 더구나 이미 서울이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갔기 때문에 전선을 조정할 필요성도 있었다. 국군은 일시적으로 방어선을 원창고개로 옮겨 지연전을 계속하다가 전황이 점차 악화되자 오후 6시경 철수하게 되었다. 이로써 춘천은 북한군 2사단의 수중에 놓이게 됐다. 6․25전쟁 발발후 3일간 벌어진 춘천전투에서 결과적으로 춘천이 북한군에게 점령되기는 했으나 북한군의 점거를 최대한 지연시켜 북한군의 수도권 외곽 포위 기도를 완전히 분쇄했다는 점에서 춘천전투는 6․25전쟁사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춘천전투에서의 국군이 탁월한 전투력을 발휘하여 3일간 성공적인 방어전 을 수행함으로써 북한군의 당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이후 북한군의 계획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춘천에서의 돌파가 지연되자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의 한강을 도하가 지연되었고 결과적으로 국군에게 한강 남안에서 전열을 가다듬 어 축차적인 지연전을 통해 반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게 되었 던 것이다. 현대전은 刀劍과 활(혹은 조총)을 위주로 하는 전근대시기의 전투와는 그 양상 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군사작전에는 정도차이는 있지만 반드시 그 지형적 이 점이라는 것이 작용하게 마련이고 이는 전근대의 전투와 현대전의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춘천전투시 국군의 주요 거점은 우두산과 발산리로 이어지는 능선, 그리고 봉의산 주변이었다. 화천 방면에서 춘천으로 공격하는 경우 반드시 강을 두 번 건너야 하며 어느 곳으로 진격하더라도 개활지를 통과하게 되어 있다. 즉, 소양강 북안에서는 용산리․지내리와 발산리 사이의 야산 능선이 우두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