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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춘천의 군사적 거점과 가치 204 군사연구 제130집 는 것도 그러한 정황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 춘천지역이 외적의 침입으로 받게 된 것은 거란 침입때이다. 거란의 후예인 金山과 金始라는 두 왕자는 몽골군에 쫓기여 수만 명의 군사를 거 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고려의 서북면 요새를 쳐 온 것은 1216년 8월경이다. 이해 12월까지 契丹軍은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고려군과 교전했으나 이듬해에 들어 거란군의 세력은 황해도와 경기도까지 미치게 되고 4월 이후에는 전투지역이 함경도․강원도로 확대되어 갔다. 39) 이어 1217년 5월 4일에는 마침내 東州(鐵原)를 함락시키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원주를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橫川(橫城)으로 물러나 둔영하였다. 40) 契 丹軍이 橫川에 둔영하는 동안 東州와 橫川, 原州 사이는 모두 그들의 세력권이 되 어 마침내 그 사이에 있는 봉의산성을 전장으로 하던 安陽都護府(강원도 춘천)가 거란군에게 함락돼 按察使 魯周翰이 죽임을 당하고 官屬들도 많이 살해되었다. 41) 이어서 중앙의 官軍 지원도 없이 고립된 상태에서 아홉차례나 契丹軍과 교전하던 原州도 식량이 떨어지고 힘이 다하여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다. 42) 7월 5일이 되어 서야 고려의 中軍과 前軍이 거란군을 충주와 원주 사이에 있는 黃驪縣 法泉寺로 추격하고, 堤川(충북)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계속 압박하여 박달재까지 이르렀다. 43) 이후 거란이 강원도 명주(강릉), 양양 등지에서 횡행하였으나 모두 패퇴시켰다. 이후 또다시 춘천지역이 전란에 휩싸이게 되는 것은 고려중기 몽고침략 때이다. 1231년부터 본격적인 고려침입을 시작하였는데, 1231~1234년까지는 주로 고려의 서북면이 주요한 전장으로 되지만, 金나라가 정복된 1235년 이후는 동북면까지 전 투가 확대되고, 南宋정벌전과 고려⋅몽골전쟁이 병행되면서 전국이 전장으로 되어 갔다. 춘천일대 지역을 비롯한 강원지방이 본격적으로 전장에 휘말려 들게 된 것 은 1253년에 들어서이다. 44) 39) 이하 契丹 侵入과 관련한 주요 사실은 江原道史 , 歷史編 第4篇 第5章 第1節 「契丹의 侵入과 江原」(周采赫 집필)을 참고함. 40) 高麗史 卷第22, 高宗1 丁丑4年 5月 癸巳. 41) 高麗史 卷第103, 列傳 第16 金就礪. 42) 위와 같음. 43) 위와 같음. 44) 이하의 蒙古 침입에 관한 내용은 江原道史 (江原道, 1995)의 제4편 제5장 제3절의 「對蒙 抗爭期의 江原」(周采赫 집필)을 주로 참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