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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춘천의 군사적 거점과 가치 202 군사연구 제130집 설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작업이었던 것이다. 당시에 춘천에 축조하였다는 주양성이 지금의 어느 곳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현재 춘천에 남아있는 성곽유적의 대체적인 성격을 고려하면 봉의산성이 바 로 주양성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여겨진다. 36) 이는 최근에 실시된 봉의산성내 건물지에서 출토된 유물이 대체로 통일신라기 이후의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 다. 그런데 문제는 신라가 춘천지역에 진입한 이후 주양성(봉의산성)을 축조하기 이전에 어느 城을 주요 근거지로 삼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7세기 전후는 삼국 의 각축이 극에 달하는 시기라는 점을 감안할 때 춘천에 진입한 신라가 성곽시설 이 없이 노천에 陣을 치고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673년 주양성 축조를 신축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개축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양상은 다르게 추 정될 수 있다. 주양성을 쌓은 같은 해 8월에 沙熱山城을 ‘증축’하였다고, 또 삼국 사기 의 기록을 보면 신라의 沙道城․三年山城·屈山二城․明活城, 고구려의 白巖 城, 백제의 馬川城 등에 대해 모두 ‘改築’하였다고 명확히 표현하고 있다. 37) 즉, 삼국사기 의 성곽 施工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 대개 ‘築’, ‘改築’, ‘葺’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점에서 주양성은 문무왕대에 새로 신축 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한 해석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이 경우, 봉의산 일대의 고분과 이 일대에서 수습된 좀더 이른 시기의 다른 출토유물에 대한 해석에 약간의 어려움이 발생한다. 심재연은 「봉의산성 소 고」라는 논문에서 봉의산에서 출토된 유물과 봉의산 기슭에 위치한 고분자료를 통하여 신라가 춘천지역에 진출한 시기를 대략 6세기 후반경으로 추정하였다. 38) 이러한 분석대로라면 봉의산성의 조성시기를 문무왕대가 아닌 더 이른 시기로 소 급시키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우두산성에 대 36) 봉의산성은 강원도 춘천시 소양로 1가 산 1-1번지 일대에 소재하고 있다. 이 산성은 춘 천의 鎭山인 봉의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에는 ‘鳳山古城’이라는 명칭 과 함께 석축으로 되어 있고, 둘레가 2,463척이라는 간략한 내용만이 기재되어 있다. 산 성의 둘레는 약 1,280m에 달하며, 높이는 5~6m 내외이나 지형에 따라 따르다. 성벽은 대체로 붕괴되었으나 일부 구간에는 석축이 남아 있으며 지난 1991~1994년에 부분적으 로 복원 공사를 하였다. 37) 三國史記 卷 第二 新羅本紀 第二 儒禮尼師今 十年; 三國史記 卷 第三 新羅本紀 第三 炤知麻立干 八年; 三國史記 卷 第四 新羅本紀 第四 眞平王 十五年; 三國史記 卷 第 十九 高句麗本紀 第七 陽原王 三年; 三國史記 卷 第二十七 百濟本紀 第五 武王 三十三年. 38) 심재연, 「봉의산성 소고」, 춘주문화 제15호, 춘천문화원,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