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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역 사 및 역 사 일 반 군사연구 제130집 199 지점이다. 이곳은 본래 봉화터로 알려진 곳이나 최근에는 ‘맥국의 산성’이라는 주 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24) 수리봉 정상의 좁은 공간에 약간의 석축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이미 조사․보고된 바 있는데 25) , 현재 이곳에서는 뚜렷한 흔적이 관찰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곳은 입지나 유적의 현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봉화 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발산리~우두산 구간의 축성이 되어 있다는 것은 1915년경에 발간된 春川郡 鄕土史料 에서 처음 기록하였다. 이 자료에 보면 “貊國山 후방 山頂으로부터 우 두산에 이르는 사이에 약간 토석으로 축성한 흔적이 남아 있다” 26) 라고 하였다. 그 러나 현재 이곳에서는 土石을 활용하여 구축한 뚜렷한 축성의 흔적은 찾을 수 없 다. 다만 지내리에서 발산리로 넘어가는 낮은 고갯길 근처에서 매우 특이한 유적 을 확인하였다. 이 유적은 기존에 ‘積石遺構’라고만 알려진 것으로 27) , 산 능선 위 의 약 20m여 미터되는 곳에 강돌이 흩어져 있는데 그 용도는 미상이다. 삼악산성의 맥국 관련설은 1935년에 발간된 春川風土記 에서 처음 나타나고 있다. 28) 春川風土記 에서의 이 기록은 아무런 역사고고학적인 조사나 검토없이 단순히 傳言을 바탕으로 ‘貊國의 三岳山城跡’이라는 제목하에 서술되고 있다. 그러 나 고고학적 조사내용이나 산성의 형태 등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이 산성이 맥국 시기와 직접 관련된 유적일 가능성은 낮다. 지난 2000년에 발간된 삼악산성에 대한 지표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먼저 축조되 었다고 여겨지는 內城의 경우 지표채집 유물에 의한 최고 상한 연대를 9~10세기 정도로 보면서 대개 후삼국 쟁란기에 조성되어 고려시대에 간헐적으로 수리되어 사용되었고 고려말 조선초기에 外城이 보완되고서도 어느 정도 산성으로서의 기 24) 한종섭, 앞의 논문, 174~176쪽. 25) 노혁진․장미영․심재연, 「춘천군의 도요지 및 관방유적」 춘천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 한림대 박물관․강원도․춘천군, 1994, 264쪽. 26) 춘천공립보통학교 편, 春川郡鄕土史料 (1915년경 발간) 第十章 沿革及名勝舊蹟 二 . 名 勝舊蹟. 27) 문화재청․강원도․춘천시․강원문화재연구소, 문화유적 분포지도 춘천시 , 2003, 292쪽. 28) 春川風土記 第8章 春川의 名勝舊跡(二十七. 貊國의 三岳山城跡 沿革及傳說)에 「삼악산 성이라고 칭하며 貊國時代에 防盜를 위해 축조하였다고 전한다. 덕두원 부락의 남방 약 700間 거리의 삼악산 봉우리 능선에 있다. 天嶮을 이용하여 반쯤은 人工을 가한 석축의 산성으로 長城 형태를 하고 있다. 서남단 근처의 ‘王垈’라고 칭하는 곳에 당시의 와편이 散在하고 있는데 전체 길이가 약 20餘間이다. 春川邑誌에 「三岳城在三岳山 四面絶險峻岋 可謂防守之地而城內泉井不乾」이라고 되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