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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춘천의 군사적 거점과 가치 196 군사연구 제130집 료된다. 한종섭은 「貊國 왕도 유적 조사에 대하여」라는 글을 통하여 발산리 건물 지를 맥국 왕궁지로 주장하였지만 건물지 성격이나 배후 산성으로 지목한 수리봉 산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 설사 춘천에 맥국이 존재하였다고 하 더라도 그 건물지를 맥국시대의 것으로 볼 수 있는 요건이 불충분하며, 수리봉 산성도 마찬가지이다. 13) 그러나 필자는 이 일대에 어떤 정치체의 王都내지는 治所施設이 있었다는 현 저한 증거가 아직은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명확한 판단은 아직 유보되어야 한다 고 생각하지만 춘천에 근거한 세력집단이 발산리 일대에 중심지를 두었을 가능성 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입지로 본다면 발산리 일대는 治所施設이나 지역세력 집단이 웅거하기에 적합한 곳임에는 틀림없다고 하겠다. 춘천은 서쪽으로 화악산, 남․동쪽으로 대룡산, 북쪽으로 오봉산 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분지 지역이며, 두 개의 큰 북한강 물줄기가 합수되는 지점이다. 두 물줄기 사이에 형성된 삼각주가 우두~현재의 중도지역에 이르는 평지이며 우두산으로 연결되는 낮은 야산지대를 사이에 두고 신북읍 일대의 발산리, 산천리, 율문리, 유포리 등지의 평지가 위치 하고 있다. 특히 신북일대 평지는 배후가 되는 북쪽은 마적산, 오봉산, 수리봉 등 높고 험한 산으로, 나머지는 강으로 막혀 있다. 신라가 춘천에 진입하기 이전 춘 천에 근거한 초기 세력집단의 관방시설에 대한 사실은 명확히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고 고고학적인 조사도 충분한 상태가 아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이러한 내 용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그간 이와 관련하여 거론되었던 춘천지역내의 주요 관방 시설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1. 貊國 王城 문제 발산리 일대가 맥국의 왕성터라고 하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전해오면서 그와 함께 이 주변에 왕궁을 방어하기 위한 성터가 있다고 하는 傳言이 있어 왔다. 14)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유리원판사진 가운데는 춘천일대의 유적지를 촬영한 것이 다수 섞여 있는데, 그중 제5회 사료조사시에 촬영한 사진을 보면 발산리 발산일대 13) 한종섭, 「貊國 왕도 유적 조사에 대하여」 春川貊國의 歷史的 硏究 , 춘천시․강원향토문 화연구회, 2005. 14) 최복규․최승엽․이해용, 춘천 맥국 관련유적 지표조사보고서 , 춘천문화원․강원고고학 연구소, 1996, 43․44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