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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역 사 및 역 사 일 반 군사연구 제130집 193 비롯하여 2) 「春川 牛頭山城考」 3) , 「춘천 삼악산성의 축조양상」 4) , 「춘천지역의 성곽 유적 연구」 5) 등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古代에서부터 현대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춘천지역의 주요 군사적 거점이 어느 곳이며, 그것이 어떤 사유에 의해 변화하였고,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신라의 牛首州 설치 이전의 군사적 거점 춘천지역의 고대사회에 대한 사료적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이며, 특히 성곽축 조나 성곽에서 벌어진 전투와 관련하여서는 더욱 그러하다. 특히 三國史記 와 같은 正史 기록에서 춘천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지리지 내용을 비롯한 몇몇 단편적인 것 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춘천에 대해서는 삼국시대 어 느 시점까지도 독자적 세력인 맥국(혹은 貊)이 존재하였다고 하는 說이 있어 왔 다. 춘천에 맥국이라는 집단이 있었는지의 여부는 학설적 논쟁이 될 수 있지만 춘천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낙랑이나 백제 혹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 더라도 상당한 세력을 가진 지역세력이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춘천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강 주변 지대에서 발견되고 있는 수많은 청동기시대~철기시 대의 주거유적은 이 지역의 번성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 라고 할 수 있다. 6) 더구나 춘천은 지리적으로 군사적 방어에 매우 유리한 조건 을 갖추고 있기에 그와 같은 지역세력집단이 자리잡기에 적합한 곳이기도 하다. 한편 大東地誌 에 의하면 강원도는 “본래 예맥의 땅이었는데, 樂浪과 百濟가 이를 나누어 차지하였고, 東漢末에 신라가 점차 그 지역을 개척하여 晋初에는 泥河에까지 이르렀다” 7)라고 하였다. 또한 그 註記에 ‘春川爲樂浪所據’라든가 “原州⋅橫城⋅洪川⋅春川⋅狼川⋅金化가 邊界를 이루었다”라는 대목이 있는 2) 유재춘, 「북한강 유역의 전란과 성곽 연구」, 강원문화사연구 제4집, 1999. 3) 유재춘, 「春川 牛頭山城考」, 강원문화사연구 제9집, 2004. 4) 노병식, 「춘천 삼악산성의 축조양상」, 한국성곽학회 2005년도 추계학술대회 발표문, 2005년 11월 19일(개최장소 : 춘천국립박물관 대강당). 5) 유재춘, 「춘천지역의 성곽유적 연구」, 春州文化 제20호, 춘천문화원, 2005. 6) 강원도사편찬위원회, 강원도사 2(선사시대), 제5장․제6장 참조. 7) 大東地志 卷15, 江原道. “本濊貊樂浪百濟分而有之 東漢末新羅漸拓其地 晉初至于泥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