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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30집 21 그리고 38선 분쟁 등을 통해 국내 정치세력, 분단 정부 사이의 갈등에 주목하고 있다. 20)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논의가 전쟁의 기원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마다 중요한 자료를 내 놓고 있지만, 이용하는 자료에 따라 서 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을 뿐 전쟁의 기원에 대한 결정적인 주장을 내 놓지 못하 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전쟁의 기원에 대한 문제가 자료의 발굴과 그 해석에 따라 기원 문제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 소련 자료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전쟁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끝났다고 판단 할 수도 있지만, 중국과 북한에서 새로운 자료가 공개되거나 미국이나 소련에서 새로운 자료 발굴이 이루어지면, 전쟁 기원에 대한 논의는 다시 시작될 수도 있 다. 이는 3절에서 인용한 고트발트에게 보내는 스탈린의 서한을 통해 잘 드러난 다. 역사 연구에서 자료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료의 발굴 이상으 로 전쟁 발발의 기원을 규명할 수 있는 보다 큰 차원에서의 보편적 시각이 필요 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앞의 2절과 3절에서의 분석은 다소 단순하기는 하지만 전쟁의 기원으 로서 중요한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3절에서 거듭 언급되었던 ‘오판 (miscalculation)’ 또는 ‘오인(misperception)’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자. 이는 당 시 존재했던 객관적인 ‘사실(fact)’이나 ‘조건(condition)’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사실이나 조건들을 ‘행위자(actor 또는 agent)’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느끼고’ 있 었는가의 문제이다. 이렇게 되면 사실이나 조건이 객체가 없는 ‘주체(subject)’가 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가 ‘주체’가 되고 사실이나 조건은 ‘객체(object)’가 된다. 생각의 전환을 위해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1949∼1950년과 마찬가지로 1967∼1968년에도 한반도에서 남과 북 사이에 안보위기가 있었다. 그 런데 왜 1950년에는 전쟁이 일어났고, 1968년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21) 또 다른 차원에서 보면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2권에서 밝히고 있듯이 타이완 해협의 위기가 한반도보다 더 큰 위기라고 평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타이완이 아닌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는가? 유사한 위기 상황에서도 특정 지역, 특정 20) 정병준, 2006《38선 충돌과 전쟁의 양상》, 돌베개. 21)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질문은 왜 1950년 9, 10월이 아니라 6월이었는가 이다. 1967~1968년 의 위기에 대해서는 졸고, “Beyond the Myth,” Pacific Affairs 2009 spring, vol. 8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