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page

군 역 사 및 역 사 일 반 군사연구 제130집 187 (국문초록) 일제하 재만 항일무장투쟁의 추이와 의미(Ⅰ) - 김 봉 렬 - 본고는 일제하 만주지역의 독립운동기지건설과 독립군부대 결성 및 1920년경 의 항일무장투쟁 그리고 이후 분산된 독립군의 통합운동 과정에서의 대한통의부 에 이은 삼부의 성립과 활동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일제강점기 재만 항일무장투쟁은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함으로써 국내외 어떤 지역보다도 장기간 지속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만주 각지에는 1910년을 전후 한 시기부터 한인 자치단체와 한인학교가 설립됨으로써 반일역량의 축적과 함께 독립전쟁기지 건설의 기반이 마련되어 갔다. 1919년 8월 이후 수시로 펼쳐진 국내 진공작전에서 독립군부대들은 일본군 국 경수비대와 일제 통치기구를 습격 파괴하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다. 이는 만주 한인사회의 오랜 염원이었던 본토 수복을 위한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지속적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항일무장투쟁사에 있어서 매우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독립군의 국내 진공작전으로 국경수비에 타격을 입은 일제는 독립군의 색출 진압을 위해 두만강 건너 간도에까지 불법 침입하였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쟁은 이 과정에서 일본군 정규군과 맞붙어 승리한 대표적 전투이다. 무기와 병력면에서 의 절대적 열세를 극복하고 일본군 정규군에 맞서 대승을 거둔 쾌거는 독립군과 재만 한인사회 구성원 전체의 민족해방을 위한 끊임없는 염원의 결과물이었다. 독립군부대들은 한인 교포사회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효과적인 무장투쟁을 위 해 새로운 근거지로의 장정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자유시참변과 북경군사통일회 의의 유회로 통합군단에 의한 항일독립투쟁의 계획이 무산되자 재만 독립운동단 체들은 1922년 1월 남만통일회의를 개최하고 대한통의부를 결성하였다. 통의부의 의용군은 1920년대 전반기 국내와 만주를 무대로 국내진입작전과 함께 친일파를 처단하는 핵심부대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대한의군부를 조직한 복벽파의 탈퇴에 이어 무장투쟁 노선을 지지한 의용군 간부들의 이탈로 분열과 침체에 직면하였 다. 이에 만주지역의 독립운동단체는 재차 통합운동을 추진하며 1920년대 중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