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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역 사 및 역 사 일 반 군사연구 제130집 167 투지를 들 수 있다. 독립군은 오직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생명 을 돌보지 않고 적과 맞섬으로써 병력과 무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큰 전과를 거둘 수 있었다. 다음으로 전술, 전략면에서 일본군을 압도하였다. 독립군은 삼림과 계곡 등의 지형과 지세를 적절히 활용하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함으로써 접근해 오는 일본 군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었다. 이외에 한인사회에 기반을 둔 항전이었음을 들 수 있다. 독립군의 모체였던 현지 한인사회는 독립전쟁에 즈음해 군수지원과 정보제공 등 헌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영세한 농민이 주류를 이룬 한인사회임에도 불구 하고 이들은 군자금을 내어 무기, 군량, 피복 등의 군수물자를 전담하였을 뿐만 아니 라 일본군의 동태를 살피는 역할과 각종 통신연락을 담당하였다. 또한 현지사정에 밝아 독립군의 부대이동이나 병력배치 시 현지 안내를 맡아주었다. 따라서 청산리전 쟁은 독립군부대와 한인사회의 독립을 향한 굳은 신념과 처절한 노력의 결실이 유감 없이 발휘된 항일독립전쟁사상 최대의 쾌거였다고 할 수 있다. 63) 독립군과 한인사회 구성원들이 청산리전쟁에서 보여준 항일의지 및 투쟁력 그 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과정에서의 실질적 체험 등은 향후 항일무장투쟁과 항일민족운동상에 많은 교훈과 과제를 안겨주었다. 이는 우선 항일독립전쟁을 위 해서는 무장력과 전투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해야 지속 적이고 장기적인 투쟁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항일독립운동단체와 그 지 도부 또한 한인사회와 민중에 뿌리를 두고 있을 때만이 효과적 투쟁을 할 수 있 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이후 1920년대 만주지역 독립투쟁 과정에서 하나의 교훈으로 남아 지속적인 실천과제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효과적인 항일무장투쟁 을 위해서는 독립군부대의 통합군단으로의 체계화 일원화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개별 전투는 물론 대규모 독립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명령체계 일원화를 통한 연합 합동작전을 펼칠 수 있는 통합군단으로의 추진이 매우 절실하였다. 이 같은 필요성은 청산리전쟁 후 현실화되어 통합군단인 ‘대한 독립군’을 결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64) 63) 김봉렬, 2005, 앞의 논문, 173-75쪽. 64) 위의 논문, 1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