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page

특 집 군사연구 제130집 141 않았다. 23) 이로 인해 마틴 대령을 비롯한 많은 장교와 부사관들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이는 계속해서 지휘관과 부사관들의 잦은 교체 로 연결되어 부대의 응집력과 단결력을 저해하고 동료를 신뢰하지 못하는 악순환 이 계속되었다. Ⅳ. 맺 음 말 미군의 참전 소식은 대한민국 국민과 국군에게 커다란 희망을 가져다 주었지만, 실제로 전장에서의 전투 수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미국인 당사자들 역시 미군의 참전으로 북한군이 38도선으로 되돌아가리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이것 역 시 북한군의 강력한 공격으로 물거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낙동강까지 계속되는 패배에 괴로워 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 전투는 이러한 결과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제공해 주고 있다. 제일 먼저 참전한 제24사단의 전투 효율성은 전체적으로 낮은 상태에 있었다. 지금까지 많 은 연구자들이 지휘관의 지휘능력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오 히려 지휘관들의 능력은 최소한 평균적인 미군 수준에 있었다. 리더십보다는 T-34전차를 제압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를 비롯한 화력의 열세, 정보의 부실로 인해 적에 대한 정확한 인식 부족, 통신 장비의 부족으로 인한 효과적인 통제의 불가능 등이 더 결정적인 요소들이었다. 특히, 참전 이전의 훈련 상태는 대단히 미흡하였으며, 제24사단을 비롯하여 일본에 주둔하던 대부분의 미군 사단들은 비 슷한 상태에 있었다. 여기에 구소련 고문단의 조언을 받은 북한군의 전술을 묵과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전 전투에서의 패배는 예견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다만 이것을 제24사단의 잘못이라고 보기보다는 미군 전체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제24 사단이 아닌 다른 사단이 참전하여 전투를 실시하였다고 해도 크게 다를 바가 없 23) 제8군이 체질을 바꾸어 진정한 전투부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1951년부터이다. 리지웨 이 장군과 밴플리트 장군이 차례로 제8군사령관에 부임하면서 이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전의에 불타는 싸우는 군대로 전환시켰다. Kelly Jordan, Building Combat Power: The Combat Effectiveness of the United States Eighth Army in Korea, January-July 1951 (M.A. Thesis, The Ohio State University, 1996)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