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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30집 135 내린 점이다. 워커 장군이 제1기병사단의 상륙과 전개를 위해 20일까지 북한군을 대전에서 저지하라는 임무를 부여하였지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19일 밤에 철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딘 소장이 철수를 결심한 것은 20일 점심 식사 이후 였다. 전투가 종료되고 나서 모든 것이 명백해진 후의 판단으로는 19일 밤, 즉 북 한군이 유성 방향의 제1대대 진지를 전차로 돌파하였을 때 전 부대가 철수하였다 면 커다란 피해를 받지 않고 옥천으로 이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때는 북한군 도 퇴로를 완전하게 차단하기 전이기 때문에 철수에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딘 소장과 보샘프 대령이 북한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연대장은 19일 밤에도 20일까지 충분히 방어가 가 능하다고 믿으며 이를 딘 소장에게 인식시켜 주었다. 19) 전후에 딘 소장은 대전에서의 자신의 실수로 수색중대의 제34연대 배속과 19 일에 철수하지 않은 것을 듣고 있으나 전술적인 관점과 당시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이보다는 연대장에게 대전 방어의 권한을 일임하는 것보다는 사단장으로서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는데 더욱 노력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단을 직접 지휘하였 다면 미군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사단의 연대장들은 대체로 능력이 뛰어난 장교들이었다. 제19연대장 멜로이 대 령이나 제21연대장 스티븐스 대령은 웨스트 포인트를 졸업하고 제2차 세계대전 경험자로서 전투 경험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부대 지휘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었다. 실제로 전의-조치원 전투나 대평리 전투에서 연대장들은 퇴로가 차단되 거나 부상을 당했음에도 부대를 이끌고 성공적으로 지휘하여 왔다. 그러나 제34 연대의 경우는 이들과 상황이 달랐다. 제34연대장으로 처음 전투에 참가한 장교는 Jay B. Lovless 대령이었다. 상급 자들에게서 “신경질적이고 예민하며, 참을성이 부족한 독재자”와 20) 같다는 평가 를 받은 그는 결국 딘 소장의 뜻대로 평택-안성 선에서 적극적으로 방어전투를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해임되었다. 후임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딘 소장과 같 이 제44사단에서 근무한 마틴(Robert Martin) 대령이었다. 전투지휘관으로 명성 을 떨친 그는 신임연대장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우선은 북 한군의 진출을 저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34연대의 전의를 높이는 것이었 19) Blair, The Forgotten War, pp.132~133. 20) Ibid. pp.9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