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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30집 15 Ⅲ. 결정의 근거가 된‘오판’ 지금까지 많은 연구 성과에서 위의 스탈린과 김일성, 박헌영 대사에서 주목한 것은 뒷부분이었다. 이는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는가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왜 먼저 총을 쏘게 되었는가의 문제이다. 북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 는 사실은 위의 문서가 공개되기 이전에도 이미 흐르시초프의 회고록을 통해서 도 알려졌으며, 유엔 안보리에 소련 대표가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유엔이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유엔군을 결성, 파견하였다는 사실 역시 ‘누가’의 문 제에 대한 해답이 이미 이전부터 제시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왜’에 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스탈린이 왜 1949년과 1950년 서로 다른 결정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내리는 것이다. 14) 이 질 문은 일단 본고 2절에서의 논의를 통해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즉, 1949년의 변화 된 상황들이 스탈린으로 하여금 1949년과 1950년 서로 다른 결정을 하도록 만들 었다는 점이다. 특히,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스탈린뿐만 아니라 김일성도 1950년 초의 시점에서 한반도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간에 미국이 참전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위의 인용문에서 언급되지 는 않았지만, 1950년 1월 미국의 국무장관 애치슨이 미국의 방어선을 언급하면 서 한반도를 방어선 안에 넣지 않은 것 역시 이러한 판단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 을 가능성 역시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스탈린과 김일성의 판단은 올바른 것이었을까? 문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3일도 되지 않아 워싱턴은 주일미 군의 한국 파견을 결정하였다. 이는 유엔에서 유엔군 결성을 위한 결의안이 나 오기 이전이었다. 스탈린과 김일성은 미군의 참전 여부에 대해 결정적으로 ‘오판 (miscalculation)’을 한 것이다. 스탈린은 미국의 참전에 의해 제3차 대전으로 전 14) 실상 ‘누가’ 전쟁 결정의 최종 책임자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적지 않 다. 그러나 김일성의 제안과 스탈린의 허가, 그리고 모택동의 동의와 협조라는 점에 대해 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완범은 이에 대해 스탈린 ‘감독’에 김일성 ‘주연’으로 표현하 고 있다. 1949년과 1950년의 대화록을 보면 전쟁 계획의 핵심에는 김일성이 있었음에 대 해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단지 스탈린의 허가와 지원 없이 전쟁을 일으킬 수 없었던 상 황을 보여준다. 따라서 스탈린은 ‘제작’과 ‘지원’을 모두 한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