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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30집 127 들로 하여금 전방 상황을 전현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여기에 병사들의 자질과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더욱 문제를 악화시켰다. ‘경찰 역할’(police action)로 초기에 참전한 제24사단의 병사들은 자신들의 참전 사실 만으로 북한군이 진격을 멈추고 38도선 이북으로 돌아갈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 다. 이것이 잘못된 판단임을 알았을 때에는 자신들이 전투 군인의 임무보다는 점 령군의 임무에 더욱 충실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일본에 주둔하면서 훈련을 거의 실시하지 않았고 참전 경험이 없는 병사들로 충원된 부대였다. 7) 이와 같은 결점 들은 결국 전장에서 싸우는 장병들이 피로 보상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의 공격은 7월 19일 아침에 야크기의 공습으로 시작되었다. 옥천 북방의 제21연대 진지를 공격한 야크기는 연대의 대공포와 미 F-51전폭기의 공격의 격 추되거나 격퇴되었다. 동시에 대평리에서 대전으로 남하하는 북한군 전차와 야포 를 공격하여 피해를 주었다. 그러나 지상에서의 전투는 순조롭지 못하였다. 북한 군은 논산과 유성방향에서 정면공격을 실시하면서 대전 남방으로 우회하여 미 제 24사단의 퇴로를 차단하고자 하였다. 북한군 제4사단 제18연대는 7월 18일 우회기동을 시작하여 20일 밤과 새벽에 대전-논산 및 대전-대구의 도로를 차단하였다. 이들은 1.5기수의 탄약과 3일분의 식량 및 개인별로 1~2발의 박격포탄을 메고 산악행군을 통해 은밀히 기동하여 퇴로를 차단한 것이다. 8) 이로써 제24사단의 퇴로는 완전히 차단되었지만 딘 장군 이나 보샘프 대령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들은 이동 중에 논산 가도 에서 수색중대 1개 소대와 조우했지만 정확한 정보가 지휘관들에게 전달되지 못 하였다. 논산 가도에 배치되어 있던 L중대의 1개 소대는 몰려드는 적을 막아내지 못하 였지만, 마침 사단장의 지시로 적시에 도착한 제19연대의 제2대대가 적을 격퇴함 으로써 진지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적의 주공 방향이었던 유성 방면은 시 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점점 악화되어갔다. 유성-대전 가도를 중심으로 갑천 주변 에 배치된 제34연대 제1대대는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현 진지의 고수가 7) Roy E. Appleman, 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Washington, D.C.; U.S. GPO, 1960), p.180. 8)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과학원 력사연구소, 자유와 독립을 위한 조선인민의 정의의 조국 해방전쟁(조선 로동당 출판사, 1959), 75~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