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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전투와 미군의 전투효율성 126 군사연구 제130집 장에 배치함으로써 적의 예상 주공 방향에 대한 대비를 하였다. 전반적으로 병력 이 부족한 상태에서 제34연대장은 유성-대전 축선에 상당한 방어의 중점을 두었 으며, 다른 지역은 경계부대만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제34연대의 방어계획은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에 의해 변경되었다. 제 24사단 하나로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하기를 기대하던 미군 지휘부는 이것이 불가 능하자 결국 제25사단과 제1기병사단을 우선적으로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이 중에 제1기병사단의 영동 부근 투입을 위해 대전에서 더 많은 시간의 확보가 요 구되었다. 결국 워커 중장은 제24사단이 대전을 하루 더 방어해 줄 것을 요구하 였고 사단의 철수 일자는 19일에서 20일로 변경되었다. 이와 같은 제8군사령관의 지시에 부응하기 위하여 딘 소장은 대전의 제34연대를 보강하고자 제19연대 제2 대대와 사단 수색중대를 제34연대에 배속시키고 7월 10일에 사단에 공수된 3.5인 치 대전차 로켓도 연대에 지급하였다. 제24사단이 대전을 방어하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적으 로 북한군에 월등히 열세한 병력과 장비로 방어해야 되는 처지에 있었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계속되어 온 전투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제 34연대와 증강된 보병 및 포병 등을 포함하여 약 4,000여 명의 병력과 1개의 혼 성포병대대로 방어를 실시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반해 북한군 사단들은 약 60~80%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6) , 결정적으로 전차 사단의 지원 속에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둘째, 병력의 부족은 방어 정면의 확 대로 귀결되었다. 제24사단이 3개의 보병대대로 대전의 전면을 방어하기에는 역 부족이었으며, 이는 방어부대 간에 넓은 간격이 발생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여 기에 산악을 이용하여 우회하는 적을 대응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탄약과 장비의 부족이다. 적 전차와 보병을 분리하기 위해서는 포 병 및 박격포의 지원이 필수적인데 탄약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화력 지원이 원 활하지 못하였다. 특히, 보병 부대가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60mm, 81mm, 4.2인치 박격포 탄의 부족은 심각한 문제였다. 여기에 통신 장비의 절대적인 부족 은 그나마 열세인 미군이 마치 눈을 감고 전투하는 상황을 전개하였다. 특히 유 선의 절대적인 부족과 이를 보완하는 무전기의 결함 및 건전지의 부족은 지휘관 6) T. R. Fehrenbach, This Kind of War; The Classic Korean War History(Washington, D.C.; Brassey's, 1998), 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