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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30집 123 줄 것이다. 2) 이를 위해 전투 효율성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분석하는 기준을 설명하며, 이와 같은 기준에서 대전 전투를 분석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 제24 사단을 비롯한 극동 미 육군의 문제점은 무엇이었고, 이러한 문제점들이 실제 전 장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설명함으로써 6․25전쟁 초기 지연전 단계에서 미군의 참전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진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미군도 국군처럼 낙동강까 지 밀리게 된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대전 전투는 군대가 무엇을 통해 전투력을 발휘하는지 아니면 전투력의 발휘를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하는지 현재의 우리에 게 중요한 교훈을 남겨준다. Ⅱ. 미 제24사단과 대전 전투 3) 미 제24보병사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뉴기니, 레이테, 루존 전역에 참전한 부대로 전쟁이 끝난 후 일본 큐슈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다. 장교와 부사관들 중 절반 이상이 참전 경험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병사들은 그러하지 못하였다. 또한 전후의 감군 정책으로 인해 사단의 각 연대들은 2개 대대로 편성되어 전체 병력 이 15,000여 명에 불과하였다. 이들이 6․25전쟁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인 최초 의 미군이었다. 대전에 이르기까지 미 제24사단은 죽미령, 평택-안성, 천안, 전의-조치원, 공주, 대평리 등에서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하고 방어선을 구축하고자 노 력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실제로 대전 전투가 벌어지 기 직전의 사단 병력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사단은 제19, 21, 34보병연대와 포병 등 지원부대로 편성되었다. 제일 늦게 한국에 도착한 제19연대(연대장 Gay Meloy 대령)는 대전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의 금강선 방어를 위한 대평리 전투에 서 배속된 부대를 포함한 3,400여 명 중 약 650여 명(19%)의 손실을 입었다. 더 욱 치명적인 것은 연대의 2개 대대 중 제1대대가 약 43%의 손실로 전투력을 상 2)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전투 효율성이 급격하게 상승한 것은 리지웨이(Matthew Ridgway) 장군이 부임하고 미 제8군의 전투 능력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면서부터이다. 3) ‘대전 전투’에 대한 설명은 온창일 외, 6․25전쟁 60대 전투(황금알, 2010), 55~62쪽; Roy E. Appleman, 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Washington, D.C.; U.S. GPO, 1960), pp.146~181; 온창일, 한민족 전쟁사(법문당, 2001), 601~611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