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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전투와 미군의 전투효율성 122 군사연구 제130집 Ⅰ. 머 리 말 ‘대전 전투’는 6․25전쟁 초기에 실시된 전투로 너무나 잘 알려진 전투이다. 제 일 먼저 파병된 미 제24 보병사단이 질주하는 북한군의 예봉을 꺾기 위해 오산에 서부터 전투를 벌였지만 번번이 실패하다가 급기야 대전에서 대패하고 사단장이 실종되기에 이르고 말았다. 이러한 대전에서의 불명예를 만회하도록 낙동강에서 반격하면서 미 제8군 사령관 워커(Walton Walker) 중장은 미 제24사단으로 하여 금 대전을 재탈환하도록 배려하였다. 그러나 대전에서 미군이 경험한 충격은 쉽 게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군이 신생 군대에 패배했 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이었다. 많은 연구가들이 북한군의 우수성과 미군의 오만을 승패의 요인으로 꼽고 있 다. 맥아더 역시 미 제24사단으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제1기병사단을 인 천에 상륙시켜 전쟁 이전 상태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1) 그러나 미 제24사단은 북한군의 진격을 막지 못했고, 결국 대전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말았다. 이 러한 미 제24사단의 패배는 딘(William Dean) 소장을 비롯한 24사단의 전술적 과오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1950년 미군 전체의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 기도 하다. 1950년의 미군, 그 중에서도 극동 육군의 상황은 전투를 위한 군대라기보다는 점령군으로서 일본의 치안 유지가 중요 임무인 군대였다. 전쟁을 위한 준비보다 는 점령한 일본 열도의 조속한 전후 복구와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치안 유지가 제일의 임무였던 것이다. 그 해 6월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이러한 군대 가 북한 ‘정규군’을 상대하였던 것이다. 결국 1950년의 미군은 ‘전투 효율성’이 극 히 저조한 군대였으며, 이러한 전투 효율성을 지닌 군대가 패배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대전 전투의 전투 경과를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전투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미군의 전투 수행을 분석하여, 대전 전투의 패배가 단 순히 미 제24사단 내의 문제가 아니라 미 극동 육군 전체의 문제였음을 보여 1) 맥아더가 최초에 구상한 ‘Blue Heart’계획에 의하면 미군 2개 사단으로 38도선을 회복하려 했으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북한군 진출을 저지하기에 급급하여 총 5개의 미군 사단을 투입하였고, 인천 상륙을 위해 추가적으로 2개 사단을 투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