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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체계 발달과 전쟁의 상관관계 연구 232 군사연구 제128집 비를 동원하여 공성(攻城)작전을 전개하였고, 고구려군은 기존의 각종 수성(守成) 장비와 궁시, 쇠뇌 등을 이용하여 수성작전을 전개하였으나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 지 못하고 개모성, 요동성, 백암성, 비사성이 차례로 함락되었다. 그러나 양만춘 장군이 지휘하는 안시성은 달랐다. 당군이 충차와 석포 등 모든 공성장비와 수단을 동원하여 2개월 넘게 공격하였으나 고구려군이 일체의 공격행 위를 중지하고 오로지 성의 방어에만 주력하는 수성작전을 전개함으로써 당군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당시 당군이 안시성을 공격하였을 때 사용한 석 포는 큰 돌을 300보까지 투사하였다고 한다. 당나라군의 2차 침공 시에도 당군은 충차와 석포 등을 동원하여 변경지역 성(낭 소성, 석성)을 공략하였으나, 박작성은 끝내 함락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철수하였다. 결국 당 군은 최초 의도대로 고구려 군을 제압하지 못하고 철수하였는데 당군의 대 군(大軍)이 상대적으로 열세한 고구려군을 제압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으나 고구려 군이 평시에 개발한 수성장비 등 무기체계를 기반으로 성(城) 중심의 효과적인 방어를 할 수 있었던데 있다고 본다. 45) 다. 통일신라의 당군(唐軍) 축출 전쟁 1) 전쟁의 경과 신라와 연합군을 형성한 당군은 백제를 멸망시킨 후 1만여 명을 사비성에 잔류시키고, 백제 지역에 당의 국내 행정제도와 동일한 형태의 행정구역을 개편 하였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을 통하여 신라는 당이 신라군을 고구려 침공에 이 용하고, 결국 당의 속국으로 편입시키려는 저의를 간파하였다. 이에 신라는 국가 정체성마저 훼손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절감하게 되고 한 반도에서 당군을 축출하는 전쟁에 주력하는데 이러한 전쟁은 고구려가 멸망한 이 후 670년 중반부터 옛 백제 지역에서, 그리고 672년 후반부터는 고구려 고토지역 으로 확대하여 전개되었으며, 결국 당의 전투력을 크게 소진시킴으로써 당의 세 력을 대동강 이북으로 축출하는데 성공하였다. 45) 서정권ㆍ양대규, 전게서, 2007, pp.55~92. 재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