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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 訓 崇 祖 敦 睦 家 傳 忠 孝 禮 本 德 行 제 200 호 2008년 7월 25일 (금요일) www.kwangsankim.or.kr 종보의 지령이 200호가 나오기까지 33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일간지 같으면 1년도 안 걸리는 200일이 면 이룩될 것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느냐고 혹자는 의문을가질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창간호를 1975년 9월1일이었으니 그 때 는 그래도 의욕이 넘쳐 월간으로 2년을 못 채운 21호까지 발행하였으나 재정과 인력난에 봉착하여 부득이 계간으 로변경하는과정을거쳐1977년6월의22호부터1983년 52호까지 근 6년간 계속되었다가 그후 격월간으로 발행 한 것이 오늘에 이르러 33년 만에 지령 200호가 세상을 만나게된것이다. 대종회 창립 60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종보가 그 절반 을 넘는 역사의 기록을 남긴 셈이니 그 의의는 높이 평가 되어야 하지만 신문의 4대 기능(報道, 指導, 娛樂, 廣告)면 으로 분석하여 볼 때 미흡한 점이 없지 않 으나 그 동안 종 보 발행의 실무에 직접 참여해 온 여러 종인들에게는 존 경심이 가지 않을 수 없으며, 특히 무에서 유를 창조한 초 기의종인들에게감사를드려야할것이다. 창간호 발행인은 蓮洙 회장이었고, 편집위원장은 永哲 부회장, 주간은 重洙일가, 인쇄는 명보정판사를 경영하던 永奇일가가 희생과 봉사로 이룩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후 발행인은 容順, 在珏, 熺洙, 弘洙, 吉洙, 琦洙, 斗漢 회장으로 이어졌고, 편집위원장은 駿洙, 魯洙, 炅中, 益洙, 德洙 종보담당부회장으로 그리고 편집주간은 容旴, 祐鉉, 容九, 元中, 永杓, 容培, 孝中 일가 등 역대 사무국장으로 이어졌으며 인쇄인도 永奇일가에서 金秉善씨를 거쳐 한 국씨티에스의 金圭錫회장으로 이어지면서 33년의 연륜 이쌓인것이다. 종보의 창간사에 보면‘사회적인 의의를 위한 방향모 색’에 오랫동안 고민과 논의 끝에 발간에 이르렀으며, 씨 족의 파벌의식이 추호도 개재되어서는 안 되며 종인전원 이 혼연일체로 협조를 당부한다는 내용으로 보아 시·도 및 시·군종친회 창립에 촉진재가 되었으며, 대종회 회관 건립과 평장동 성역화와 숭조돈목에 기여하고, 최근에는 장학재단 설립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특히 계파간의 기사 에서 옥에도 티가 있듯이 오해를 받아 논란도 한 두 번이 아니었음도부언해둔다. 앞으로는 200호까지 오면서 쌓아온 경험을 재산으로 삼아 창간사의 의도대로 매진할 따름이며 아울러, 백만 종인의 더더욱 크나큰 가호가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발행 200 호 종보 200호 발행에 즈음하여 먼저 光山金氏 宗報 200호가 발행되 기까지 종사를 위해 애써주시고 헌신적 으로 참여해 주신 여러 일가분들과 함 께 본보 발행인의 한사람으로서 자축함 과 동시에 그간 오늘에 이르기 까지 종 보 발행을 위해 애써준신 모든 일가분 께깊이감사의말씀을드립니다. 오늘날과 같이 종보가 되기까지 어려 운 여건 하에서 수많은 난관을 거치면서 발전해 온 것은 그 당시 선배제위의 노력과 종보로서의 역사와 품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며, 종보가 국내외에서 우리 일가 사회 뿐 아니라 타 문중으로 부터도 높 이평가받고있음도이또한자부하는바입니다. 대종회는 현재^대종회60년사_편찬을 위해 원고와 자료를 모으고 있는 바, 종보 발행 이전의 자료는 찾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인데 그나마 종보 이후의 역사적 사료는 기록으로 남아있 어서 퍽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종보의 발행이 얼마나 큰 역할 을해왔는지새삼되돌아보게되는것입니다. 종보는 초창기에서 상당 기간 동안 열악한 조건 아래에서 발행을 해 왔기 때문에 그 어려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선배원로종인들은입을모으고있습니다. 오늘과 같이 수없이 제호가 바뀌고 편집디자인이 변하면서 컬러판 제작을 하게 된 것 또한 그 동안 많은 종보 편집위원님 들의노력과참여가있었기때문으로사료되어그분들의노고 에 다시 한 번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종사의 발전에 서 종보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으며, 종보가 앞으로 지 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할 수 있도록 종인여러분들의 부단한 협 조와 참여를 당부 드리며, 종보 200호 발행을 다시 한 번 축하 해마지않습니다. 대종회장 金 斗 漢 축 사 우리 백만종인의 소식지 종보가 대 종회 기관지로서의 기능과 종족의 정 신문화 함양을 목 표로 1975년 9월 1 일 창간되어 30여 년이 지난 오늘 지 령200호 기념 특집을 발간하게 되었습 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자랑이요, 경사 라하겠습니다. 우리 종보는 창간에서 오늘에 이르기 까지 종인들 간에 의사소통과 보학의 학 습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대외적 홍보역 할 등 광산김씨 전체의 공익을 위해 기 여하고 봉사하였습니다. 특히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세 번이나 넘기 면서 중단 없는 지속으로 오늘의 위상을 구축하였음은 종인 모두에게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 다고높이평가합니다. 우리 종보 발행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묵묵히 봉사해 주신 두한 회장님을 비롯 한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 다. 그리고 오늘의 사랑과 찬사가 한 차 원승화되는계기가되길소망합니다. 끝으로 모든 종인 여러분에게 조상님 의 가호와 행운이 항상 충만 하시길 기 원드립니다. 대종중 도유사 金容元 종보200호발간을축하하면서 1975년 9월 1일,“전국에 흩어져있는 일가들 의 친목을 도모하고, 선조의 거룩한 뜻을 오늘에 되살려 나라와 겨레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자 한 다.”라는 취지와 목적을 내세우고 발간을 시작 한 光山金氏 종보가 어언 33년이란 세월 속에 수많은 사건과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이제 200 호발간에즈음하게되었습니다. 창간 당시 대종회총본부 회장이셨던 蓮洙 회장 은창간사에서“사회적인의의를위한방향모색에그이유를두고오랜 기간논의끝에종보를창간한다.”고하고, “어느씨족이나한종족의종 중 행사록이 되어서는 아니되고, 본의가 아니었다 해도 그 곳에 씨족적 파벌의식이추호도게재되어서는결코아니된다.”고하였습니다. 저는 창간 당시 대종회 조직부서의 임원으로 종직을 맡아오다가, 1984년 4월부터 1993년 3월까지 4대에 걸쳐 대종회 회장직을 수행 하면서 회관건립을 비롯하여 조직 강화와 일가화합에 진력을 다해왔 고, 조상님의 빛나는 얼을 이어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이 러한 종사의 과정을 뒤돌아보면종보의역할이 지대하였다는것을 그 누구도부인하지못할것입니다. 이는 지난날 역대회장님을 위시한 임원 및 종보관계자, 전국에 계 신 종인여러분들의헌신적인노력과협조가있었기에오늘과 같이뜻 깊은 날을 맞이하게 되었고, 종보 발간 200호의 감격적인 의미는 가 슴설레게하는일이아닐수없습니다.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종보 발간의 취지와 목적을 위해서 또한 후 세에 물려줄 수 있는 빛나는 전통과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든 후손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힘을 써서 훌륭한 가문으로서 긍지 를갖도록해야하겠습니다. 지령 200호가 나오기까지 그 동안 헌신적으로 봉사를 해 주신 모든 일가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도 끊임없는 종보 의발전이있기를기원하는바입니다. 상임고문 金 熺 洙 2008년도제1차이사회개최 지난 6월 20일(금) 저녁, 대종회 회의실에 서 제1차 이사회가 基中 총무담당이사의 사 회로 성원보고 후 斗漢 회장의 개회선언으 로개최되었다. 斗漢 회장은 인사에서“바쁘신 가운데 참 석하여 주신 상임고문님, 그리고 시·도종 친회장님과 임원여러분께 감사하게 생각한 다”고 말하고“오늘 회의에 상정될 안건을 심도있게심의의결을구한다”고하였다. 이어서 弘洙 상임고문은 격려사에서 일 가간에화합을강조하였다. 孝中 사무국장은 종무보고에서 ①대종회 정기총회 개최의 건, ②^자랑스런 광산인_ 패 전달의 건, ③대종보^컬러_판 발간의 건. ④장학기금모금현황등보고가있었다. 이어 협의 및 결의사항에서 斗漢 회장은 ①재이북 선조 망제 일정의 건, ②대종회 및 시도종친회 임원단합대회의 건, ③시조공 대제 참사의 건, ④대종회 고문 및 상임자문 위원 간담회 개최의 건, ⑤종규개정 심의 소 위원회 구성의 건, ⑥제18대 국회의원 일가 축하모임의건을孝中사무국장으로부터상 세한 제안 설명을 들었으며 斗漢 회장은 항 목별로 상정하여 이의 없이 원안대로 의결 하고회의를마쳤다. 慶 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