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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 재 되어도 우리땅 독도 지킬터 여기 국토의 막내 독도릐 '영유권수호'를 위하여 일생을 바친 이가 있으니 정녕 겨레의 사표요 의인이라할것이며 그 숭고한 행적은 민족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빛날 것이다. 우국충정 일념으로 독도를 지킨 분이 돌래수군 안용복장군과 자랑스런 울릉인 독도의용수비대였다면 민족정기 지혜로써 독도를 지킨 분은 화성의 의인 사운 이종학공이라. 세종대왕 친형 양녕댁군의 21세손인 공은 1927년 10월 1일(음력 9월6일)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주곡리에서 태어났으며 선천적으로 의협심이 강하고 정의로운 성품으로서 소년기에는 화합과 덕성을 연마하였으며 건국전문대학을 수료한 청년기에 이르러서는 충무공 이순신장군 사료등 역사자료 수집에 몰두해 오셨으며, 이후 일본의 한국침탈과 독도영유권 문제를 심도있게 연구해 오셨다. 공은 1980년대 초부터 20여년간 일본을 50여차례 방문하여 방대한 '한일관계사 및 독도관련자료를 수집 이를 집대성하였으며, 평소 '조선해는 민족의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해 주는 육로요, 독도는 조선해를 지키는 파수꾼이다.'라고 주창하시면서 독도의 영유권 확립과 동해를 조선해로의 명칭환원운동등 우리 영토 수화와 왜곡된 역사 바로잡기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셨다. 특히 공이 평생을 통해 모은 독도자료 830종 1,301점은 독도박물관 건립과 운영에 토댁가 되었으며, 1998년 2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초대 독도박물관장을 역임하셨다. 2001년 3월에는 평양에서 일제의 조선 강점 비법성에 대한 남북통일자료 전시회를 개최하고 2,000여점의 자료를 북한사회과 학원에 기중하는 등 한일관계사 재정립을 위한 남북한 공동대응방안 모색에도 적극 힘써 오셨으며, 지역사회를 위하여도 공은 3억여원의 사재를 들여 독도박물관 표석건립과 야외 독도박물관을 조성하여 울릉도에 기증하엿으며, 불우이웃위문등 사회복지사업에도 남다른애정을 쏟음으로써 온 군민의 귀감이 되셨다. 이렇듯 공이 이땅에 심어준 거룩한 업적을 영원히 기리고 흠모하기위아여 울릉군민의 정성을 모아 여기 한점 빗돌을 세우니 독도사랑의 시금석이 될것이요, 자손만대 민족혼을 일깨우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리라. "한줌 재 되어도 독도를 지키겠다"는 공의 유지와도 같이 부디 삼봉도(독도) 창해품에서 '영토비' 벗삼아 영원히 안식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