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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font style="background-color:#ffffff;font-size:15px">삼국시대, 백제 개루왕에 의해 도성을 지키는 북방의 수호성벽으로 만들어져 이후 중원에 해당하는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였던 곳이다. 고려 고종 19년(1232)에는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거란이 침입했을 때에는 이곳에 고려 태조의 재궁(梓宮)을 옮겨 온 일도 있었다. 조선시대, 임진년과 병자년에 각각 외침을 당하게 되자 외곽 축성론이 일어 숙종 37년(1711년)에 기존의 토축산성을 석성으로 강화하는 대대적인 공사를 벌였다. 대서문, 동북문, 북문 등 13개의 성문과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고 행궁, 군창을 비롯한 12개의 사찰, 99개소의 우물과 26개소의 저수지가 있었다. 현재는 성곽여장은 허물어졌으나, 원래 남아있던 대서문과 함께 대성문, 대남문, 대동문이 모두 복원되었으며 성채가 완전히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