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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연구 제126집 99 이와 관련하여 고려 문종(文宗)9)은 재위한 지 21년(1067년) 양주의 한양에 남 경유수부(南京留守府)10)를 설치하고 이듬해 신궁(新宮)을 짓고 그 책임자로 유수 (留守)를 파견하였다. 한양에 남경을 설치한 것은 풍수지리와 도참사상 이외에 한 강유역 주민의 민심을 얻고 국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문종의 아들 숙종(肅宗)11)은 남경으로 천도하려고 했으나, 인종 때 왕궁은 화 재를 입었을 뿐 아니라 이후 몽골과의 전쟁으로 큰 피해를 당하게 되자 결국 수 도 이전을 포기하고 만다.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을 받으며 중앙과 지방의 여러 제도를 어쩔 수 없이 개편 하게 되는데 충렬왕 원년(1308년)에 남경유수부를 폐지하고 한양부(漢陽府)로 강 등시킨다. 공민왕(恭愍王)12)은 원나라 간섭으로 실추된 고려의 국권을 회복하고 자주정책 을 추진하였다. 이 일환으로 공민왕은 한양부를 다시 남경으로 개칭하고 순행하 였다. 공민왕의 아들 우왕(禑王)13)과 공양왕(恭讓王)14) 역시 남경에 자주 순행하 였고, 기울어가는 나라를 일으킬 목적으로 남경 천도(遷都)계획을 세웠으나 실현 하지는 못하고 만다. 마. 조선시대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수도 개경 수창궁(壽 昌宮)에서 1392년 7월 17일 왕위를 물려받아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였고, 1393년 2월 15일 국호를 조선으로 개칭, 「새 왕조에는 새 수도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천 도계획을 추진한다. 태조는 1392년 8월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게 한양 천도명령을 내리고, 이염 을 한양부로 보내 고려 남경 궁궐을 수리하게 하였다. 그러나 배극렴(裵克廉 : 1325∼1392년)과 조준(趙浚 : 1346∼1405년) 등이 태조에게 먼저 왕궁과 성곽을 갖추고 관아를 설치한 뒤에 천도할 것을 청하여 한양 천도는 일시 중지되었다. 주 9) 문종(文宗) : 고려 제11대 왕, 1019년생, 재위 1046∼1083년. 10) 고려 때 한양의 지위를 올리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 11) 숙종(肅宗) : 고려 제15대 왕, 1054년생, 재위 1095∼1105년. 12) 공민왕(恭愍王) : 고려 제31대 왕, 재위 1351∼1374년. 13) 우왕(禑王) : 고려 제32대 왕, 재위 1374∼1388년. 14) 공양왕(恭讓王) : 고려의 마지막인 제33대 왕, 재위 1389∼13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