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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전쟁사Ⅰ 수도 서울지역 전례 연구 98 군사연구 제126집 <그림 5> 5도 양계 리게 된다. 이때 한주에 속한 고을은 군(郡) 27곳, 현(懸) 46곳이었다. 한양군은 효공왕 8년(904년)에 양주(楊洲)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 지명은 고려 태조 23년(940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 때에도 유지되었다. 라. 고려시대 양주는 성종 2년(983년) 전국 12목(牧) 가운데 하나로 현종 3년(1012년)에 이 르러 전국 행정구역을 5도 양계(兩界)로 개편하는데 이 때 양주는 양광도에 소속 되었다. 양광도라는 명칭에서 보이듯 양주는 광주와 더불어 양광도에서 으뜸가는 고을이었으며 책임자로 목사가 파견되었다. 현종 9년(1018년)에 전국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양주에는 최고 책임자 로 주지사, 즉 양주지사가 파견되었 다. 이 행정개편에서 지방은 수도 개경, 즉 중앙에서 책임자를 파견한 고을과 책임자를 파견하지 않은 고 을로 구분되었다. 이 때 양주는 책 임자를 파견하지 않은 교하군(交河郡), 견주(見州), 포주(抱州), 행주(幸州), 봉성현(峯城縣), 고봉현(高峯縣), 심 악현(深嶽縣), 풍양현(豊壤縣), 사천 현(沙川縣) 등 9개 고을8)을 관할하 였다. 고려는 국가와 왕실의 길흉성쇠 가 지리(地理)에 의하여 좌우될 수 있다는 소위 풍수지리와 도참사상 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에 따라 길지(吉地)에 도읍을 옮기거나 왕이 잠시 머물 경우가 많았다. 주 8) 교하군(交河郡) : 지금의 파주시 일부, 견주(見州) : 지금의 남양주시 일부, 포주(抱州) : 지금의 포천군, 행주(幸州) : 지금의 고양시 일부, 봉성현(峯城縣) : 지금의 파주시 일부, 고봉현(高峯縣) : 지금의 고양시 일부, 심악현(深嶽縣) : 지금의 고양시 일부, 풍양현(豊 壤縣) : 지금의 남양주시 일부, 사천현(沙川縣) : 지금의 양주시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