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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전쟁사Ⅰ 정의의 전쟁(Just War) 이론의 한계 및 대안모색 82 군사연구 제126집 문이라는 풀이다. 그렇다면 문제다. 보스니아내전 당시 세르비아계 지도자로서 전쟁범죄를 저지른 탓에 헤이그 유고전범재판소에 기소돼 도피중인 정치인 라도 반 카라지치와 군사령관 라트코 믈라디치에게도 면죄부를 줘야 한다. 그 두 사 람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사람들에겐 ‘영웅’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보다 심 각한 문제는 그런 논리가 전쟁범죄자들에 대한 정치적 흥정과 타협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쁜 선례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서부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에서 포데이 산 코가 이끈 반군 혁명연합전선(RUF)은 10년 내전을 벌이며 민간인들의 손목을 도 끼로 잘라 악명을 얻었다. 내전 과정에서 반란군 RUF가 저지른 잔혹행위들은 1949년 제네바협약을 위반한 범죄행위 그 자체다. 그러나 1999년 로메 평화협정 으로 지도자 포데이 산코는 전쟁범죄를 백지사면 받고 ‘부통령’ 예우를 받으며 시 에라리온 동부 밀림에서 나와 프리타운으로 말 그대로 금의환향했다.39) 이를 두 고 국제적인 비판 여론이 일어났었다. “서구열강의 ‘아프리카 내전의 아프리카식 해법’이냐?”는 비판이었다. ‘싸구려 평화’를 구하려고 나쁜 전례만 남기게 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싸구려 평화’ 지적은 그뒤 현실로 나타났다. 반군들은 사면만 받은 채 무장해제를 거부했고, 평화협정 1년도 안 돼 급기야 영국군의 시에라리 온 파병까지 불렀다. 시에라리온 내전과 평화협상과정에서 국제사회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전쟁범죄에 대한 백지사면은 나쁜 선례만 남기고 평화의 길을 막는 다”는 것이다. 셋째, 기존 정의의 전쟁론들은 강대국 중심의 정의의 전쟁론이란 비판에서 자 유롭지 못하다. Jus post bellum에서 강대국의 책임을 강조하기보다는 시혜와 자 비라는 잣대로 재는 느낌을 준다. ‘승자의 평화’ 또는 ‘승자의 정의’가 되어선 안 된다는 명시적인 문장이 없다. 주 39) 필자가 시에라리온 내전 취재차 갔을 때인 2000년 봄 포데이 산코는 부통령 겸 다이 아몬드를 관리하는 전략자원 국가재건설 발전위원회 의장 직함을 지니고 있었다. 반 란집단이 전쟁범죄를 저질렀어도 평화협정으로 사면되는 과정에는 미국과 영국 등 서 방국가들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 1999년 로메 평화협정 체결과정에서 클린턴 미 대통령은 제시 잭슨 목사를 특사로 파견, 산코를 설득했다. 백지사면은 평화협상 과정 에서 RUF 반군 지도자 포데이 산코가 처음부터 고집스레 요구한 사항이었다. 협상이 진통을 거듭하자, 클린턴은 산코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평화협정에 서명하라는 설득 을 받았다. “나말고 어떤 반란군 지도자가 미국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나?” 필자 와의 인터뷰에서 산코는 그런 사실을 자랑삼아 언급했다. 김재명, 『나는 평화를 기원 하지 않는다』(서울 : 지형, 2005), pp.259~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