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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연구 제126집 363 개성에서 개최된 첫 회의에서 UN군 측에서는 교전중지와 비무장지대 설치, 국 제적십자 대표의 포로수용소 방문, 군사정전위원회와 군사참관단 설치 등 9개항 의 안건을 제시하였고, 공산군 측에서는 즉각적인 정전과 38선을 중심으로 한 20km의 비무장지대 설치, 모든 포로의 교환, 한반도로부터의 모든 외국군 철수 등 5개항을 제시하였다. 결국 양측은 몇 차례에 걸친 토의 후 다음과 같이 안건 을 결정하였다.35) 1. 회의의제의 채택 2. 한국에서의 적대행위 정지를 위한 기본조건으로서, 양측이 비무장대를 설치할 수 있도록 군사분계선을 설정 3. 정전 및 휴전에 관한 조항 수행을 감독하는 기관의 구성, 권한 및 기능을 포함한 한국에서의 정전과 휴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협정 4. 포로에 관한 협정 5. 양측의 관계 제국 정부에 대한 건의 이 중 1항은 휴전회담의 안건이 결정됨으로써 자연스럽게 해결되었고, 2항은 1951년 11월 27일, 당시의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그리고 5항은 1952년 2월 16 일, 한반도로부터 모든 외국군 군대가 철수하고 한국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정치회담 개최를 쌍방 관계국 정부에 건의한다는 공산측의 제안을 UN측이 수용함으로써 해결되었다. 이제 남은 안건은 3항과 4항이었고, 특히 포로 문제에 관한 양측의 오인은 한국전쟁 종결을 더디게 하였다. 【표 3】 전상피해(1951년 6월 말 현재) 한국군 한국 민간인 미 군 공 산 측 • 사망 : 21,625명 • 실종․부상․포로 : 190,925명 • 사망 : 170,000명 • 실종․포로 : 299,000명 • 사망 : 21,300명 • 부상 : 53,100명 • 실종․포로 : 4,400명 • 사상 총계 : 1,191,565명 * 출처 : 신복룡, “한국전쟁의 휴전 : 회담 전야의 당사국의 이해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외교사논총』, 1997, p.110. 주 35)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 下』(서울 : 국방군사연구소, 1995), p.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