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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군역 사 및 역사일반Ⅰ 대한민국 60년 36 군사연구 제126집 영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북한은 비록 주체사상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중국의 대륙문화를 온존해 오다가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김대중 대통령은 제2건국을 해야 한다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3 년 3․1절 경축사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고 했다. 일제 하 식민지시기에 민족의 해 방을 위해 희생한 독립 운동가들이 새 나라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엉뚱하게 친 일파들이 미국과 결탁해 나라를 세우는 통에 민족정기가 흐려졌다는 것이다. 분 단도 친일세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반민족 세력의 대표가 이승만이 라는 것이다. 이승만은 1949년에 친일 세력을 단죄하기 위해 설치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강압적으로 중단시키고 친일 세력이 주체가 되어 나라 를 세우게 해 국가의 정체성을 흐려 놓았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적인 시각에 의한 역사해석이다. 민족이란 20세기 일제 식민통치 속에 서 배태한 상상의 공동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 천년동안 단일민족, 단일국가로 살아왔기 때문에 민족주의의 파괴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자유, 평등, 시장, 신뢰, 법치, 도덕적 이기심 등의 문명 사적 가치도 고려되어야 한다. 탈민족적 문명사의 관점도 있다는 것이다. 좌파 민족주의의 이론은 『해방 전후사의 인식』(한길사)에 잘 드러난다. 그들 은 마오쩌뚱(毛澤東)의 신민족주의 혁명을 신봉했다. 그러나 ’70년도까지는 그런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기가 어려웠다.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 ’80년대 중반 이후에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주어지자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이 공개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 후 민주화 시대가 되어 좌파 민족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자 16개에 달하는 특 별법을 제정해 과거사청산, 의문사 조사․보상, 민주화 세력 현창, 동학란 참여자 명예회복 등 친일․친미파들이 저질러 놓은 일들을 뒤집으려 했다. 그리고 민족 통일을 지상과제로 삼았다. 이에 대해 근래 나온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은 문 명사적 입장에서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재비판한 것이다. 이승만 정부는 반일과 반공을 국시로 삼았다. 반일은 일제를 반대한 것이요, 반 공은 동서냉전과 6․25사변으로 공산주의를 반대한 이데올로기였다. 경제는 미국 의 원조에 의해 유지되었고, 농지개혁, 귀속재산 불하(拂下) 등을 통해 수입대체 공업을 육성하고자 했다. 그나마 이것이 ’60년대 박정희 정부의 수출주도 산업의 기초가 되었다. 이승만은 경상도 지주들을 자유당에 끌어넣어 재벌로 육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