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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군사 사 및 기타 Ⅰ 조선전기의 국방의식 320 군사연구 제126집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숭의전에 배향한 16위의 공신의 경우도 정몽주를 제외 하고는 철저하게 국방의 공이 선정기준이 되었고, 또 그것을 선정의 이유로 강조 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후백제를 평정한 공으로 유금필이 들어가고, 왜구격퇴의 공이 있는 무장을 뺀 대신 정몽주에게 왜구 진압의 공을 첨가시키는 것을 보면, 16위의 공신의 설정은 국왕의 선정과는 또 다르게 고려 역사를 통해 주요한 전쟁 과 내전을 선정하고, 여기에 맞추어 인물을 선정한 것 같은 인상마저 주고 있다. 이것은 앞 장에서 살펴 본 대로 조선 초기의 위정자들이 국가의 의무와 기능 중에서 국방의 의무를 가장 우선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국왕이든 배향공신이든 선정의 이유를 “백성에게 공덕이 있는 사 람”이라고 했는데, 백성에게 주는 공덕 중에서 제일 큰 공덕이 국가의 안정과 국 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Ⅴ. 결 론 조선은 건국 후 유가사상의 오랜 전통에 따라 전 왕조인 고려왕조에 대한 봉사 제도를 만들었다. 이 장소로 마전현의 앙암사가 선정되었는데, 이것이 문종대에 숭의전으로 정비된다. 숭의전에는 고려 국왕과 고려의 명신을 선정하여 배향하였다. 국왕의 경우 태 조, 혜종, 성종, 현종, 문종, 원종, 충렬왕, 공민왕의 8위가 선정되고, 이것이 원육 전 에 수록되었다. 고려사 에 기록된 이들의 업적과 사찬을 분석해 보면 이 선 정기준은 외침의 극복과 덕정, 국왕의 성품 등을 배려한 것인데, 고려의 전성기를 이끈 예종이나 개혁을 추구한 충선왕 같은 인물을 배제하고, 덕치의 업적이 부족 한 혜종, 원종, 충렬왕, 공민왕을 선정하는 등 외침의 극복이 우선적인 선정기준 이 되어 있었다. 태종대에 8위를 태조, 현종, 공민왕의 3위로 개정하게 되고, 이것이 세조오례의 에도 수록되었다. 공민왕의 경우 오늘날에는 개혁의 군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 지만, 당시 사서에서 공민왕은 성품과 내정능력에서는 가혹한 평가를 받고 있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민왕이 3위에 선정된 것은 홍건적과 왜구의 침공 등 외 적을 물리친 공과 대부분 공민왕대에 출사한 태종대의 집권층의 정치적 이해가 맞물린 결과라고 생각된다. 어찌되었든 그 결과 태종대의 3위는 원육전 보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