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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군사 사 및 기타 Ⅰ 조선전기의 국방의식 316 군사연구 제126집 이 거의 빠져버렸다.( 【표 3】참조) 이들 중에 종군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홍건적 의 난 때 활약한 이암(李嵓) 정도이다. 그래서 원종조 이후로는 기존의 배향공신 을 싹 무시하고 전적으로 새로이 선정해야 했던 것이다. 【표 3】원종~공민왕 대의 배향공신41) 국 왕 배 향 공 신 원 종 이세재(李世材)·채정(蔡楨) 충렬왕 허공(許珙)·설공검(薛公儉) 충선왕 홍자번(洪子藩)·정가신(鄭可臣) 충혜왕 한정(韓 )·이규(李揆) 충정왕 이암(李嵓)·이인복(李仁復) 공민왕 왕후(王煦)·이제현(李齊賢)·이공수(李公遂)·조익청(曺益淸)·유숙(柳淑) 일단 전체 명단을 보면 정몽주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전쟁에서 활약한 장수들임 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물론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조충은 무관이 아닌 문 관이지만 큰 전쟁에서 특별한 활약을 했다. 반면에 최승로와 같이 국정을 보좌한 재상이나 최충, 이제현, 이색과 같은 거유(巨儒)들마저도 모두 빠져 있다. 이들의 내역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배현경에서 신숭겸까지는 태조를 추 대한 개국공신이다. 개국의 공이란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하는 공이므로 이들의 선정은 논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들은 개국에는 공이 있지만, 모두 후삼국 통 일 이전에 사망하거나 전사해서 통일전쟁에서는 큰 공을 세우지 못했다. 이것은 유금필이 추가로 들어간 이유를 설명해 준다. 유금필은 태조의 장수중에서 제일 뛰어난 용장으로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장수였다. 즉 후삼국의 분열 상태를 극복한 사건을 기리기 위해 유금필이 선정된 것으로, 원육전 에서 혜종을 선정한 것과 같은 이유라고 하겠다. 국가의 분열과 내전이란 외침 못지않 게 심각한 전쟁이며 국난이기 때문이다. 그 이하 서희로부터 이방실까지는 모두 전쟁이나 내전을 진압한 공로로 선정되 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 를 저술한 당대의 문장가이자 학자였지만, 묘청의 난을 진압한 것이 첫 번째 공으로 기록되고, 그 다음에 중국에까지 알려진 문장가였다 주 41) 우왕과 창왕은 위조로 간주되어서, 공양왕은 조선 건국 후에 군으로 강등되어서 배향 공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