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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군사 사 및 기타 Ⅰ 조선전기의 국방의식 308 군사연구 제126집 그러나 나머지 왕들은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먼저 혜종의 경우 재위 중에 암살사건이 두 번이나 발생하고 자신은 불안에 떨다 요절해서 국왕으로서의 행적 이나 권위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그의 공이라면 태조를 도와 후백제 정벌에 공을 세운 것뿐이다. 이제현과 정도전의 사찬도 이 사실만을 칭찬하고 있다. 결국 혜종을 선정한 이유는 이 외에는 찾을 수가 없는데, 후백제 정벌은 그가 왕이 되 기 전의 사건이었다. 원종도 무신정권의 위세에 눌려 재위 전반기를 보냈고, 재위 중에 삼별초의 반 란을 맞았다. 이제현은 연회에 빠지고 궁녀와 놀아나고 환관을 우대했다고 비판 했다. 이제현이 칭찬한 유일한 공적은 원나라에 가서 쿠빌라이를 만나 몽고 전쟁 을 종결지은 것뿐이다. 다음으로 충렬왕을 보자. 그를 선정한 것도 정말 의외이다. 고려사 를 보면 고 려 후기 사회 모순의 근원이 된 토지탈점과 전제문란, 기타 여러 폐단들이 시작 되거나 제대로 증폭되기 시작한 시기는 충렬왕대로 기록되어 있다. 정도전은 그 의 치세를 이렇게 비판한다. 교만한 마음이 갑자기 생겨 놀이와 사냥에 빠져 응방을 확장했고 소인배 이정을 시켜 주군을 침해하여 학대했다. …… 공주와 세자가 말려도 듣지 않고, 재상과 대간이 논해도 듣지 않았다. 만년에 이르러서는 좌우의 참소 를 지나치게 믿어 그의 적자를 폐하고 그 조카를 세우려고까지 했다.30) 그렇다면 충렬왕의 장점은 무엇일까? 이제현과 정도전 모두 세자 시절에서는 국가의 전고를 밝게 익히고, 기쁨과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는 너그럽고 후 덕한 장자였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국왕이 된 후 공적은 원종과 함께 무신을 제 거하고, 몽고전쟁을 종결시킨 공만을 들고 있다. 하루아침에 하늘이 화를 뉘우치게 하여 권신들(무신정권)을 주륙하고 상 국(원나라)에 귀부하자 천자가 가상히 여겨 공주를 내려 보냈다. 공주가 오게 되자 부로들이 기뻐하며 서로 경하하기를 백년 동안의 난리 끝에 다 시 태평시대를 보게 될 줄은 생각지 않았다고 하였다.31) 주 30) 삼봉집 권12, 경제문감별집 하, 군도. 이하 이제현과 정도전의 사찬은 이 글에서 인 용하였다. 31) 위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