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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군사 사 및 기타 Ⅰ 조선전기의 국방의식 302 군사연구 제126집 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연구를 위한 좋은 단서가 고려시대의 왕과 관료들에 대한 이해와 평가 방식이다. 특히 고려시대는 우리나라 대외전쟁사의 절반이 몰 려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외침과 내전을 경험했던 시기여서 이러한 생각을 파악 하기에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고려의 국왕과 신하들에 대한 평가를 찾아 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서에 기록한 사신(史臣)들의 평가이다. 또 하나는 고려의 왕을 제사하는 숭의전에 배향하는 왕과 배향공신의 선정기준과 배향 이유이다. 그런데 이 기준 과 선정내용이 태조대부터 세조대까지 몇 번의 변화과정을 거쳤는데, 그 과정이 본고의 주제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3) 따라서 본 고에 서는 숭의전 배향인의 선정기준과 변화과정을 통해 국가의 국방의무에 대한 조선 초기의 생각과 자세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조선 건국과 왕씨 봉사 숭의전은 고려의 국왕을 제사하는 사당이다. 조선시대에 마전군(현재 경기도 주 3) 숭의전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다음과 같다. 桑野榮治, 「이조초기 니오게루 고려왕씨제 사」, 연보조선학 2, 1992, 金海英, 「조선초기 사전에 관한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1993 ; 조선초기 사전전례연구 , 집문당, 2003 재수록, 김인호, 「조선전 기 숭의전의 설치와 역사인식」, 사학연구 78, 2005. 桑野榮治의 연구는 숭의전의 설 치를 왕씨 세력에 대한 회유책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나 경제육전의 판본에 대한 오류로 숭의전의 설치 및 변화과정에 오류가 있다. 김인호의 연구는 숭의전의 설치과 정과 의미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숭의전의 설치와 배향인 의 변화과정은 대부분 이 글에 의거하였다. 그런데 이 연구에서는 숭의전에 배향하는 고려 국왕과 선정기준의 변화과정을 태조~세조 때의 정치적 변화와 문헌기록과 비교 하여 분석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하여 혁명파 및 개혁파가 주도권을 잡았던 태조대에 선정한 국왕은 안정기보다는 왕조 창건 내지는 위태로운 시기에 큰 역할을 했던 왕을 선정했다. 태종대에는 명분적인 사대관계를 확립한 국왕이 위주가 되었다. 다시 세종때 는 수성기에 걸맞는 국왕들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숭의전 배향인물의 변화를 조선전기 사대부들의 정치적 입장과 고려사 인식과 연계하 여 파악한 것은 아주 훌륭한 탁견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 점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 니다. 다만 이 연구에서는 배향신은 분석하지 않았으며, 창건 내지는 위태로운 시기에 역할을 했던 왕을 선정했다는 점을 지적하기는 했지만, 국방문제보다는 유가사상에 입 각한 통치자로서의 평가가 중시되었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국방의식이라는 관점을 더 해서 선정기준을 재고찰 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