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page

군사연구 제126집 301 Ⅰ. 머 리 말 조선은 성리학을 국시로 정하고, 과거와 학교를 부흥시켰다. 사대부 사회가 발 달하면서 고려시대에 지방사회에서 전문 무사층과 장교층을 형성하던 향리와 토 호들이 문인으로 전환하였고, 문예가 크게 부흥하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문치에 치중한 정책은 무반을 천시하고 차별하는 경향을 낳았고, 결과적으로 국방의식과 국력을 약화시켰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천인합일설에 따라 유가경전에 대한 개인의 지식과 예악(禮樂)의 실천이 우주 와 사회의 질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성리학의 사상 자체가 무반보다는 문반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1) 조선시대에 무사층이 쇠퇴하 고, 무반이 문반에 비해 제도적으로나 관념적이나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차별이라고 알고 있는 사례들, 군대의 최고 지휘관으로 문관을 임명하고, 무반의 품계는 3품관까지만 있어서 무반이 2품 이 상으로 승진하면 문산계를 받았던 것, 청요직이나 승정원에 무반직의 진출을 억 제했던 것2) 등은 엄밀히 말하면 무반을 차별하기 위해 만든 제도라기보다는 문 무반의 구분이나 교육과 양성방식, 국가체제의 성격, 군대의 동원과 전투방식이 지금과는 달랐던 데에 더 크고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더욱이 이러한 제도의 성립 이유를 국방의식의 약화에서 찾는 것은 커다란 오 류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조선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국가의 국방의무를 강조 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지금까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 았다. 그래서 본 고에서는 조선전기의 국방의식 그 중에서도 국가의 국방의무에 대한 위정자(爲政者)들의 생각과 태도를 살펴보고 그것이 제도적으로 어떻게 반영되었 주 1) 천인합일설은 우주와 인간사회의 운행이 같은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서로 감응한다는 사상이다. 그래서 정치가 가혹하여 백성의 한이 쌓이면 그것이 자연의 운행에도 영향 을 미쳐 여러 가지 자연재해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성리학에서는 이 사상을 더욱 강화 하여 인간의 내적 도덕성, 수양, 마음가짐까지도 우주와 사회의 운행에 영향을 끼친다 고 보았다. 그래서 성리학은 이전의 어떤 사상보다도 수양과 예절을 강조하였다. 불교 와 같은 이단사상에 대한 배격도 이 같은 논리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처럼 성리학적 사고 아래서 사대부의 지식과 교양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자 책임이 된다. 따라서 무반보다는 문반의 위상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2) 이성무, 조선초기양반연구 , 일조각, 1980, 82~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