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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연구 제126집 25 끼만행 사건을 일으켜 전쟁 발발 일보직전에 까지 이르게 하였다.6) 이러한 한반 도 안보환경과 미국의 대외정책 등 국내․외 정세 변화에 따라 자주국방의 필요 성이 더욱 증대되면서 독자적인 전쟁 대비계획 수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육군은 1971년 9월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에 전쟁기획실을 창설하여 한국 방어계획과 반격계획을 수립하였다. 한편 군은 국방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명확 하고 일관성 있게 하기 위하여 1972년 12월 국방목표를 처음으로 제정하였다.7) 이에 의거한 군사전략의 기본개념은 상당기간 전쟁을 억제하는데 주안을 두었으 며, 억제전력은 한․미 연합전력으로부터 점차적으로 독자적인 전력에 의존하도 록 전환하며, 전쟁억제를 통해 시간을 얻어 공수양면의 신축성 있는 군사력을 건 설하여 공격에 바탕을 둔 전략으로 발전시키고, 공세전략은 단기결전, 적 병력 섬 멸, 간접 전략의 배합, 영토의 확보 등에 주안을 두었다. 전쟁억제에 실패할 경우에는 방위전략을 적용하는데, 이는 현 전선에서 적의 주력을 격멸하고 수도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공간의 확보를 주안으로 하는 적극적인 전방방어 전략으로 발전시키며, 평시에 있어서 국지적인 도발에는 그에 상응한 응징보복을 가한다는 것이었다.8) 한편, 우리나라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1970년대 중반부터는 국방비 전액을 우리가 부담할 수 있게 됨은 물론 자주국방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자주국방의 시초는 방위산업의 육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 시 모든 무기체계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기의 국산화는 선결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이에 국방과학연구소 등을 설립하여 방위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 체제를 마련하였다. 이와 같은 방위산업의 성장을 토대로 우리 군은 1974년부터 1981년을 목표년도로 한 ‘제1차 전력증강계획(율곡계획)’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 기간 중에 적용한 전략개념은 ‘한ㆍ미 연합 억제전략’으로서 한미 군사협력 체제를 유지하고 주한미군의 전쟁억제력을 제공받아 북한의 도발을 억제함으로써 휴전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며, 재래식 국내전쟁에서 한국군 단독으로 북한의 남침을 저지할 수 있는 방위전력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만약 에 1980년대 초에 주한 미 지상군의 철수가 실현된다고 하더라고 지상작전은 한 국 육군이 전담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는 것이었다. 주 6) 육군본부, 육군 50년 발전사 , 1998년, 419∼431쪽. 7) 국방군사연구소, 건군 50년사 , 1998년, 285쪽. 8) 국방군사연구소, 국방정책변천사 , 1995년, 2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