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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연구 제126집 245 정주에서의 작은 충돌에 이어서 대한제국을 대륙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압록강에 서는 본격적인 전투를 벌였던 것이다. 또한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일본 해군과 러시아 해군의 해전은 대한해협에서 본 전투를 벌여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서 종 결되었던 것이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러일전쟁기간에 러시아군 편에서 참전한 항일 의병대를 비 롯한 한인 최초 러시아군사학교 국비 유학생들의 활동을 고찰해 내는데 중요한 의의를 두었다. 그동안 대한제국인들은 러일전쟁과는 관련이 없다는 생각이나 또 는 부득이하게 일본의 병참기지로서 조력을 했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러나 독 립을 상실하게 되는 결정적 전쟁이었던 것이며 본 연구에서는 많은 한인들이 일 본에 대한 반일 감정과 일본이 승리하게 되면 독립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 의식에서 의병이 발생해 러시아에 협조하였다는 것을 알아 낼 수가 있었다. 전쟁 중에 러시아도 이런 한인들의 협조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한인의용군 편성 계획까지 추진하였으며, 실제로도 러시아의 각 군사학교에서 국비 유학중이던 여 러 유학생들이 대일 첩보활동과 만주군 사령부 통역관으로 동원되어 활약하였음 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기꺼히 참전한 동기는 바로 항일 독립심이였던 것이다. 또한 한반도 북부지방에서 활약하던 의병부대들은 러시아군의 편에 서서 일본과의 전투도 벌였음은 러일전쟁에서 큰 의미를 둘 수 있는 점이다. 또한 러 일전쟁 후에는 연해주 지방에서 머물면서 최초 해외 독립운동을 위한 항일 투쟁 을 전개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것은 한국의 한반도 북부지방 의병들이 러시아와 연맹해서 싸운 이유는 러시아와 다르다는 점이다. 러시아 유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조국의 독립이 목적이었고 그 수단으로 러일전쟁 중에 러시아편으로 참전해서 싸 웠던 것이다. 단순히 글의 내용만 보고 러시아와 관계가 있으니까 러시아를 위해 싸웠으리라 하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다. 러일전쟁 시기에 러시아에 협조한 한인들에 대한 연구는 아직 기초적인 단계에 있다. 본 논문 역시 차후 연구들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을 가지고 있다. 특히 사료 의 부족은 가장 힘든 부분이었으며, 연구기간의 부족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본 논문에서 세심한 부분까지 다루지 못하고 소개의 단계 머문 것은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서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는 계기가 있어 러 시아군과 한인들의 같이 수행한 전투 사례나, 첩보활동의 형태 및 결과를 발굴하 면 좋은 연구과제가 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