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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전쟁사Ⅰ 러 ․ 일전쟁기 러시아군과 한인과의 관계 연구 238 군사연구 제126집 에서는 그들이 조국이 아닌 러시아군을 위해 참전했다고 보고 있다는 점이 개선 되어야 할 부분으로 남는다. 그들은 비록 러시아 무공 표창까지 받게 되지만, 참 전의 궁극적인 목적은 조국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 수단으로 러시아를 택했을 뿐 이었다. 3. 한인의병들이 러시아로 철수후 활동 이번 절에서는 러일전쟁 이후에 러시아로 철군한 한인 의병들이 러시아내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며 러시아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던 이범윤 부대는 전쟁이 끝난 뒤 1905년 11월 초 국외망명을 단행하여 무산․회령․종성․온성․경원 등지로부터 전원 총기 무장 후 3백여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간도 훈춘으로 잠시 유진하였다. 1906년 초에는 다시 청(淸)의 퇴각요구로 부하들을 이끌고 훈춘을 떠나 러시아 연해주로 들어가 간도 접경에 주둔하였다.96) 노보키옙스키 지구의 얀치해(연추)에는 전 간도관리사였던 이범윤이 살고 있습니다. 이범윤은 의병대와 함께 러일전쟁에 가담해 아니시모프 장군 휘하에서 일본에 대항해 싸웠으며 전후에는 의병대와 함께 얀치해에 있습 니다. 현재 국경 행정관은 우리 영토에 머물렀던 대한제국인 사병들의 어 려움을 고려해 거주권 지급에 대한 요청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거주증명 없는 자들을 국경선 밖으로 추방하는 것은, 올해 4월 거주증 미소지 혐의 로 경찰에 의해 대한제국으로 추방된 김온주, 전봉현, 백기홍의 경우에서 이미 일어났다시피, 그들을 사형선고에 내리는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97) 앞선 보고서에 따라, 각하는 전(前) 대한제국 군사들을 정해진 법의 테두 주 96) 박민영, 『舊韓末 西北 邊境地域의 義兵 硏究』, 성남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 학원, 1996, pp.277~278. 97) 또한 다른 문서에서도 보고자 스미르노프(Смирнов) 국경행정관은 이들이 여권 미소 지 혐의로 일본인들에 의해 경흥에서 처형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РГИА ДВ, Фонд 1, Опись 3, Дело 1160, Лист 252. 이들은 의병이라는 대한제국 명칭을 달고 다닌 자들인데 이들은 단지 제 시간 안에 자신에게 자신들이 어떤 대한제국 정치 조직의 소속인지를 밝히지 않아 국경 밖으로 내쫓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이것을 밝히기만 했더라면 그들은 지난해 한 무리의 경우에서도 그러했듯, 변경 지방 장관이 제게 내린 특별 명령에 근거해 대한제국이 아 닌 만주로 보내졌을 것입니다. 라고 보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