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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연구 제126집 235 이 되어 사실상 폐교를 의미하는 무기한 휴교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러 시아인들은 일본군의 욕설과 테러의 공포 때문에 정교회와 공사관에 모여 있었 다. 2월 10일에는 프랑스 서울 주재 공사 대리 혼뗀에(Фонтенэ)가 러시아 공사 관을 찾아와 파블로프(Павлов) 공사에게 일본 측 공사의 폐쇄 통지를 전하고 러시아 공사관의 철수를 종용했다. 이렇게 되어 파블로프 공사를 비롯한 공사관 원과 교사 비류코프는 서울에 있던 러시아인들과 함께 2월 12일 제물포항에서 프랑스 군함 파스칼호와 영국 군함 탈보트호 편으로 상해로 떠나게 되었다. 그 리고 관립 러시아어 학교는 이때부터 실질적으로 폐교되고 말았다.84) 그러나 러 시아어 학교 교사 비류코프와 학생들의 관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904년 4월 초 대한제국에서의 첩보 활동을 구성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외무성으로부터 파블로프 공사에게 귀국하지 말고 만주군 사령부에 가서 외교 업 무를 맡으라는 훈령을 받았다. 파블로프의 계획은 러시아내 학교에서 수학하고 있는 대한제국인들을 러시아에 필요한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것이었고, 퇴역한 포병 대위인 비류코프에게 그에 관련된 임무를 맡기는 것이었다.85) 쿠로파트킨 만주군 사령관은 파블로프를 보자 대한제국에서 군사무관이 철수해 일본군의 동태에 대한 정보가 급하다고 하였다. 주일공사 로젠(Losen)은 바로 본 국으로 가 일본 내의 실정도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극동총독 알렉 세예프(Алексеев Е.И)는 동년 5월 파블로프 공사에게 보낸 비밀전문에서 비류 코프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대위 계급으로 다시 현역으로 복귀 할 수 있도록 하 며 대한제국 북부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의 한 군 부대에 파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보고서는 직접 파블로프에게 제출하도록 비류코프에게 지시하 고 그 복사본은 극동총독부 야전 참모부에 보내라고 하였다.86) 곧 니제고로드(Нижегород) 유년학교 등에 유학 중인 현홍근, 윤일평, 구덕송, 오완석, 한기수, 한우경, 강한탁 이상 7명을 불렀다. 또 페테르부르크의 대학에서 임시 한국어 강사로 있으면서 러시아 주재 대한제국 공사관에 근무하던 김평옥도 만주군 사령부에 통역관이 되었다. 한인들에게는 전선에서 초급 장교에게 주어지 주 84) Пах Чен хё, Русско-Японская война 1904-1905 гг. и Корея, c.179. 85) John Chapman, Rethinking The Russo-Japanese War, 1904-5 -Volume II, p.165. 86) АВПРИ, Фонд 143, Опись 491, Дело 2982, Лист 1-146, 1904년 5월 7일(5.20) 알렉 세에프(Алексеев Е.И)가 파블로프에게 보낸 비밀 전문 ; 박종효, 『러시아 國立文書 保管所 所藏 韓國 關聯 文書 要約集』, p.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