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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전쟁사Ⅰ 러 ․ 일전쟁기 러시아군과 한인과의 관계 연구 228 군사연구 제126집 이 중립선언은 극비리에 1901년부터 중국 지부 주재 프랑스 영사가 대한제국영 사업무를 겸하고 있어 프랑스 영사를 통해 외부대신 명의로 프랑스어로 오스트리 아, 미국, 영국, 독일, 이태리, 중국, 러시아, 프랑스 그리고 일본 외상 앞으로 타 전 되었다. 그리고 1904년 1월 21일부터 29일 사이에 영국은 공감한다는 회답을 비롯해 독․불․이태리의 주한 각국 공사들은 각기 본국정부를 대신하여 이 성명 을 받았다고 회답해왔던 것이다.58) 그러나 일본은 “시기에 적절하지 않다”59)고 강변하면서 대한제국 정부의 중립선언을 거부하였다. 다만 러시아만 유일하게 1월 29일 승인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당시 러․한 관계가 상호 신뢰 및 협조의 바탕 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60) 그러나 이 중립국 선언은 매우 형식적인 것으로 그 실현 가능성 또한 회의적이 었다. 왜냐하면 대한제국은 스스로 중립을 지킬 힘이 없었으며 실제로 열강국가 들에게 있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러일 양국이 중립을 지키는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러시아나 일본 중 한나라의 편을 들 필요도 그렇다고 대 한제국의 중립선언에 관여 할 의도는 더욱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열강 들이 대한제국 중립선언을 인정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줄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었다.61) 그 동안에 일본 정부는 대한제국의 중립 선언을 승인하는 것을 고의로 거절하 였다. 만약 일본이 이를 승인한다면, 그 후 일본이 저지르는 모든 행동들이 명백 한 강압과 국제 질서의 파괴의 특성을 지닌 것으로 판명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없이, 만약 대한제국의 중립 선언을 승인하였다 하더라도, 일본은 대 한제국의 식민지화 계획과 한반도 영토를 만주로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 변화시 킬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목표는 특히 1903년부터 1904 년 초까지 전쟁 준비 과정 동안에 명백하게 들어났다. 일본 정부의 도쿄에서 열 린 러시아-일본 간 회담의 결정적 단계는 러시아에 군사적 침투를 준비하는 구 체적인 행사들로 마무리되었다. 러시아 측은 명백히 만주의 이권을 보호하는 완 충지대로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마침내, 러시아 정부는 극동 주 5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2, 대한제국』, 서울 : 탐구당문화사, 1999, p.224. 59)『日本外交文書』36권 1책, 事項 7, 「韓國ノ中立保障要請一件」, 700 韓國國外中立ニ關 シ回答ノ件, pp.724~725. 60) Пах Чен хё, Русско-Японская война 1904-1905 гг. и Корея, с.150~151. 61) 김성혜, 『러일전쟁을 전후한 대일외교정책』,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 1999, pp.76~77.